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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약사도 "가자, 해외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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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대전의 한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 김모(36)씨는 주말마다 서울로 올라와 미국의 의사시험과 관련된 강의를 듣는다. 개업한 선배들이 경영난 등으로 병원 문을 닫는 것을 보면서 미국에서 의사로 취업하기 위해서다.

약사인 조모(30.여)씨는 올해 초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영어 공부보다는 호주의 약사 면허를 따는 것이 목적이다. 조씨는 "약사 면허만 있으면 호주로 쉽게 이민을 갈 수 있다"며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의 의.약사 면허를 따려는 우리나라의 의사와 약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경기 불황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의약분업, 의료 시장 개방 등 국내 의료 환경마저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의대생.전문의 1000여명 응시=미국은 의료인력 부족으로 외국 출신 의사에게도 의사면허시험(USMLE)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을 주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전체 의사 중 10%가량이 외국인으로 채워져 있다. USMLE는 국내에서 기초과학.임상 등과 관련한 시험을 두 차례 본 뒤 미국에서 실기 등 시험을 추가로 거쳐야 한다. 최종 합격까지는 보통 5년 정도 걸리며 교재비.응시료 등이 연간 1000만원을 넘는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미국 의사고시 강좌를 개설한 K학원에 따르면 2001년 10여명에 불과했던 수강생이 현재는 매달 50명에 달한다. 미국.캐나다.영국 등의 의사 시험을 준비하는 인터넷 모임은 회원수가 1만여명으로 2001년 개설 초기에 비해 7배가량 늘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1000여명의 의사들이 USMLE에 응시해 500명 정도가 합격하고 이 가운데 100여명이 미국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다. USMLE 준비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것에도 불구하고 응시생이 늘어나는 것은 사회적 지위와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받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P학원 권오억 부원장은 "30대의 젊은층뿐만 아니라 병원을 개업해 자리를 잡은 50대 의사들도 강의를 듣고 있다"며 "향후 외국의 유명 병원들이 국내에 들어올 경우 좀 더 유리한 조건에서 취업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한몫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 영주권 얻기 위해 약사면허 취득=O학원에 따르면 1988년 3명에 불과하던 미국의 약사 면허시험 응시생이 2003년 105명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응시자격이 6년제 약대 졸업생으로 제한되면서 응시생들은 미국 대신 캐나다나 호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한국에서 약사 경력이 있는 사람이 약사면허 시험에 통과하면 '독립이민' 형식으로 영주권을 얻는 데 유리하다. 독립이민은 전문.고급 인력을 대상으로 하는 이민이기 때문에 자산 상태를 따지지 않는다. 호주나 뉴질랜드도 필기.실기시험 등을 통과하면 약사면허가 발급되며 약사협회에 등록돼 이민이 수월하다.

그러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대한의사협회 권용진 대변인은 "외국 생활에 정착하지 못해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는 의사들도 상당수"라며 "외국에서 의사나 약사로 일할 경우 고수익이 보장된다는 막연한 기대는 금물"이라고 지적했다.

손해용.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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