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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2년] 上. 자리잡은 실용노선…정권운영 성적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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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 지금은 … 개혁피로와 경제침체로 지난 2년간 민심이 요동쳤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말부터 '선진 한국론'을 설파하고 과감한 인사정책을 통해 실용주의 노선을 뚜렷하게 부각했다.

*** 검찰은 국민에 … 국회는 정당에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연두 기자회견에서 대기업 노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양보를 촉구했다. 그리고 열흘 만에 기아자동차의 채용 비리 사건이 터졌다. 노조의 부도덕성에 대한 질타가 사방에서 쏟아졌다. 대통령의 의중에 딱 맞는 수사는 당연히 확대될 것으로 예측됐다. 수사를 총괄했던 검찰 고위간부는 그러나 "청와대로부터 어떤 요구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제 그런 것(청와대의 압력) 없어진 지 오래됐다"고도 했다.

정치권에선 정권 초기 노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줄줄이 검찰에서 조사받은 뒤 "검찰이 이렇게 세게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대로 놔둬선 안 된다"고 했다던 이야기가 아직도 회자된다.

노 정권 2년의 긍정적 변화로 '권력기관들의 제자리 찾기'가 첫손에 꼽힌다. 권력을 쥔 쪽에서 '권력'을 놔줬고, 그로 인한 금단(禁斷)현상도 지난 2년 동안 잘 참아왔다는 평가다.

노 대통령 자신도 "정권을 위해 일하던 권력기관들이 국민을 위한 봉사기관으로 거듭났다"는 점을 가장 큰 성과로 뽑았다. 지난해 정기국회 시정연설에서다.

대통령이 여당을 지배하고 국회까지 좌지우지하던 과거의 정치권 관행도 많이 달라졌다. 지도부 구성을 위한 4월 전당대회를 앞둔 열린우리당에서 노 대통령이 누굴 지지하느냐는 '노심(盧心)'논란은 나오지 않고 있다.

노 대통령이 당 또는 국회를 압박한 사례로는 "보안법은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는 발언(지난해 9월)이 주로 꼽힌다.

이종걸 당시 원내 수석부대표는 그러나 "대통령 발언 이전에 당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던 사안이었다"며 "보안법을 포함, 당의 정책결정 과정에 대통령이 관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국회의 과반수 의석 확보에 관심없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에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대통령 생각이 그러니 당 지도부도 4월 재.보궐 선거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을 것 아니냐"는 얘기다.

'친노(親盧)세력'은 있지만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가신(家臣)'과는 다르다. 현 정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문희상 의원은 "노 대통령은 사적인 경로보다 공적인 시스템을 통한 분권형 통치에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며 "대통령의 뜻만 좇는 가신은 대통령이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정욱 기자 <jwkim@joongang.co.kr>

*** 정치자금, 안 주고 안 받고

참여정부 출범 후 정치자금 부담이 확실히 줄어들었다는 게 재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과거엔 정치인을 만나면 돈을 주는 게 관행이었고 정치인도 받는 것을 당연시했다"면서 "그러나 참여정부 출범 후에는 돈을 주는 게 매우 껄끄러워졌고 상대방도 받을 생각을 안하더라"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현명관 부회장도 "지난 2년간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정치자금 요청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다"면서 "권위주의 의식이 사라지고 깨끗한 사회가 된 것은 이 정부의 큰 성과"라고 언급했다.

재계는 그 원인으로 참여정부 들어 치른 홍역을 가장 많이 꼽고 있다. 삼성.LG.현대자동차.SK등 대그룹은 물론 롯데.한화.한진.부영 등 중견그룹 상당수가 지난 2년 내내 정치자금 수사와 재판으로 시달렸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1990년대 중반 YS정부 때 덴 것을 포함하면 두 번째"라면서 "이제는 겁이 나서라도 돈을 못준다"고 밝혔다. 4대 그룹 고위관계자는 "지난해 총선 때도 돈을 주거나 요청받은 기억이 없다"면서 "앞으로도 요청을 받으면 합법적으로 처리될 수 있는지를 철저히 따질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치자금법의 개정으로 후원회 행사가 금지된 것도 정경유착이 줄어든 배경이다. 한 경제단체 고위관계자는 "지금은 경제단체를 통한 정치자금 공급은 전혀 없다"고 단언하면서 "DJ정부 시절엔 정당 후원회가 있어서 다른 경제단체들과 함께 후원금을 낸 적이 있다"고 했다.

물론 정치자금이 근절되진 않았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정치권이 강하게 요청했을 때 당당하게 거절할 수 있는 기업이 많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재계 고위관계자는 "3년 전에도 재계는 불법적인 정치자금은 주지 않겠다고 공식 결의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면서 "지금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김영욱 전문기자<youngkim@joongang.co.kr>

*** 협소한 인재풀 … '코드'인사

현 정부 출범 이후 코드인사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전기'코드'(cord.줄)로 착각되기도 하는 코드(code)란 말은 원래 '특정 그룹에서만 통용되는 사전 규약'이란 뜻이다. 야당은 정권 초기부터 "노무현 정부가 개인능력과 무관하게 이념적 성향이 입맛에 맞는다는 이유만으로 진보 인사들을 대거 요직에 발탁했다"며 코드인사 공세를 폈다.

야당의 비판은 대통령 주변의 386 운동권 출신 및 영남권 민주화 인맥을 겨냥했다. 문재인 대통령민정수석, 이강철 시민사회수석, 안희정 전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 윤태영 대통령부속실장, 천호선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이호철 전 민정비서관, 박범계 전 법무비서관 등이 거명됐다. 초기 내각 멤버 중엔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이창동 전 문화부 장관,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등이 코드인사 사례로 분류됐다. 학계 출신으론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다.

논란은 정.관계를 벗어나 사회 각 분야로 번졌다. 문화.예술계에선 진보 성향의 민예총 출신 인사들이 국립국악원장.문예진흥원장.문화관광정책연구원 등 각종 요직을 독점하면서 논쟁이 일었다. 법조계에선 민변이 새로운 파워 엘리트로 떠올랐다.

이 와중에 곡절도 많았다. 정권인수위 출신의 윤성식 고려대 교수를 감사원장 후보에 기용했다가 야당 반발로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고영구 국정원장 후보는 국회 청문회의 '부적절'의견에도 불구하고 임명을 강행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청와대는 "그때 그때 적임자를 골라 검증을 거쳤다"면서 코드인사 주장을 부인했다. 그러나 현 정부의 인재풀이 협소하다는 지적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야당은 "친노그룹이 감투 나눠먹기 잔치를 벌이고 있다"고 공격했다.

이 같은 코드인사는 2003년 말부터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대표적 사례가 안병영 교육부총리, 오명 과기부 장관 등 보수안정형 인사들의 기용이다. 노 대통령은 이어 청와대 비서실장에 김우식 연세대 총장을 영입했고, 여권 내 개혁 진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신임을 보이고 있다.

김정하 기자<wormhole@joongang.co.kr>

*** 국론 분열 부른 '막말' 정치

한나라당이 최근 노무현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아 소속 의원 상대로 대통령의 실정과 선정을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박근혜 대표를 비롯한 55명이 '국민통합 실패와 국론분열 심화'를 첫째 실정으로 꼽았다.

노 대통령이 이 같은 평판을 받는 데 가장 큰 몫을 한 것은 그의 '입'이다. 야당에선 이를 두고 '막말 정치'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의 발언 중 폭발력이 컸던 건 2003년 10월에 있었던 '재신임' 발언이다. 최도술 당시 총무비서관이 대선 때 돈받은 것과 관련해 "그동안 축적된 국민 불신에 대해 재신임을 묻겠다"고 한 것이다.

그해 12월 정당 대표들과의 청와대 회동에선 노 대통령이 "(내가 쓴) 불법 선거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를 은퇴할 용의가 있다"는 이른바 '10분의 1' 발언까지 해 여야간 긴장도는 더욱 높아졌다.

이후엔 선거와 관련한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거리가 됐다. 노 대통령은 2003년 말 "민주당을 찍는 것은 한나라당을 도와주는 것"라고 한 데 이어 이듬해 2월엔 "국민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해 야당의 반발을 샀다. 선관위는 이를 두고 '선거중립 위반'이란 유권해석을 내렸다. 이어 야당은 탄핵 카드를 꺼내들고 재발 방지를 요구했지만 대통령은 "굴복할 수 없다"며 '대결'을 택했다. 그해 3월 9일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안이 야당의 공조로 발의됐다.

그 이틀 뒤 열린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또 다른 화근이 됐다. 노 대통령은 형 건평씨에게 청탁한 것으로 알려진 고(故)남상국 전 대우 사장을 거명하며 "좋은 학교 나오고 크게 성공한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머리 조아리고 돈주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날 오후 남 전 사장은 한강에 투신 자살했다.

탄핵안이 발의돼 탄핵심판이 기각될 때까지 온 나라는 그야말로 극심한 분열상을 보였다. 한때 "대통령이 TV에 안 나오면 나라가 조용하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떠돌기도 했다. 국민은 대통령의 말이 더 이상 국론분열의 씨앗이 아닌, 국민통합의 희망이 되길 바라고 있다.

이가영 기자<ide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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