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억대 내기 골프가 무죄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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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서울 남부지법 한 판사가 수천만원씩을 걸고 1년6개월 동안 수십 차례 내기 골프를 친 혐의로 구속기소된 피고인 네 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판결은 일반 국민의 법감정은 물론 기존의 대법원 판례와도 다르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재판부는 도박죄 성립 요건으로 승패의 결정적 부분이 우연에 좌우돼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화투.카드.카지노 등은 이에 해당되는 반면 운동경기는 경기자의 기능과 기량이 지배적으로 승패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골프는 도박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 판사는 "운동경기에 재물을 거는 경우까지 도박죄에 포함시킨다면 올림픽 금메달 포상금이나 프로선수의 성과급도 도박이 되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가 도박 범주에 넣은 화투.카드.카지노 등도 사기 도박이 아닌 한 어느 정도 기량이 필요하다. 또 골프.당구에서도 우연이 작용할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설령 기량만이 승패를 결정한다 해도 내기의 규모가 상식을 벗어나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도 생각해야 한다. 재판의 판결은 법관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그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를 떠난 판결은 생명력이 없다.

남부지법의 이번 무죄 판결은 유사 사건과의 형평성에 있어서도 문제다. 다른 재판부에선 내기 골프를 하다 적발된 사람들에게 잇따라 유죄를 선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도 2003년 9월 한 타당 최고 40만원씩을 걸고 10억원대의 내기 골프를 한 혐의로 기소된 기업인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더구나 몇 백만원짜리 고스톱판을 벌였다가 처벌받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욱 혼란스럽다.

재판은 법관 고유의 권한이다. 하지만 유사한 사건의 재판 결과가 재판부나 판사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다면 사법 불신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마침 검찰이 이번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겠다고 밝혔으니 상급심이 심리를 서둘러 조속히 결론을 내려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