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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원형 복원이 먼저인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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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광화문의 현판을 원래 서체로 재현한다는 명분으로 바꾸어 달 예정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순조의 어필이나, 당대 명필가의 집자로 작서(作書)한다더니 이제는 디지털 작필로 방향이 바뀐 모양이다.

당연히 현재 달려있는 박정희의 아날로그 육필 편액의 처리를 두고 여러 논란이 일고 있다. 첫째는 35년간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고 이미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새로운 복원도, 중수도 아닌 마당에 현판만 교체한다는 것은 '승자의 역사 파괴'라는 일부 정치인의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반론은 경복궁 복원사업의 하나로 이미 1997년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이 있었다는 이유를 든다. 하지만 그때의 논의는 경복궁 복원의 논의지, 현판 처리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는 또 다른 반론도 있다.

이런 논쟁과는 별도로 한글 현판이 비록 독재자의 휘호지만 경복궁이 한글창제의 산실이라는 점에서 마땅한 장소에 걸려있는 만큼 내려서는 안된다는 주장(한글단체)과, 독재자의 휘호는 민주화 시대에는 퇴출 대상이라는 논쟁도 만만치 않다.

광화문은 정도전이 창건할 때 정문이란 이름을 가졌지만, 세종이 광화문이라 개칭하였다. 임진왜란 때 분노한 민중이 방화하여 소실된 것을 대원군이 중건했으며, 일제 강점기 때 중앙청 건립으로 동편으로 이전되었다가 6.25 때 소실된 것을 유신시대에 복원했다. 적어도 일곱번의 변천을 겪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더 중요한 일은 현판을 갈아 끼우기 전에 광화문 자체의 원형과 현판의 실체를 밝히는 일일 듯싶다.

어떤 것이 원형이고 어디에 기준을 두어야 하는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 위원이나 역사학자들이 얼마나 심층적으로 고증하고 고민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이제야 대원군 시대 현판자료를 찾아내 디지털 복원 운운 하는 것을 보면 심층적으로 검토했거나 고심했던 흔적은 전혀 없어 보인다.

주인이 없다 해서 문패만 바꾸었다고 내 집이 되는 것은 아니다. 광화문의 실체는 온데 간데 없는데 문패만 바꾸어 놓고서 '문화재의 원형 복원'이라고 주장해 보라. 정말로 광화문의 해태가 웃을 일이다. 아니 이미 웃고 있지 않은가?

다음은 현판을 거는 자의 자격이다. 대체로 창건자나 중건자의 의지가 깊이 반영되는 것이 관례다. 그러니까 광화문은 천하역적(사실과는 다른 평가지만) 정도전, 불세출의 성군 세종대왕, 국수주의자(이것도 매도하는 측의 논리로 본다) 대원군, 그리고 독재자 박정희의 그림자들이 깊게, 그리고 길게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유신시대의 편액을 역사로 볼 수 없다면, 쇄국주의 시대의 편액을 꼭 디지털로 복원해야 하는 이유도 논리적으로 어디에 근거를 두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광화문은 이미 수백년 동안 만신창이가 되었다. 여기에다 사이버 현판만을 바꾸어 다는 것은 억지로 덧칠하는 것이나 같은 일이다.

먼저 광화문의 원형을 밝히고 충실히 복원하라. 그래야만 적어도 연고가 생기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독립신문 1896년 7월 14일자 기사를 패러디로 인용해 본다. "누구든지 광화문의 원형을 본 자 있거든 '황토말우 우휘 통신국'(광화문 옛 자리)으로 오시오."

진용옥 경희대 교수.전파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