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 지배구조 대변화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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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신한금융그룹의 지배구조가 급격히 변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폭과 속도가 금융권의 당초 예상보다 훨씬 크고 빠르다. 금융감독원이 라응찬 신한지주 회장에게 중징계 방침을 사전 통보하면서다. 금감원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를 앞두고 이뤄진 것이어서 금융권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징계가 확정되려면 한 달 정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 라 회장이 바로 그만둬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징계가 확정된다면 라 회장은 50년 금융 인생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게 된다. 또 자신이 경영하던 은행까지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금감원에 의해 확인된 이상 금융그룹의 최고경영자(CEO) 지위를 계속 유지하긴 어렵다.

금융그룹 회장으로서의 리더십에 결정적인 흠이 난 이상 정상적인 직무 수행은 어려워지게 됐다. 만약 그가 물러난다면 신한의 지배구조 자체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

◆후계구도 모색할 듯=이 때문에 신한 내부는 물론 금융계에선 ‘포스트 라응찬’ 체제에 대한 시나리오가 여러 갈래로 나오고 있다. 직무정지 상태에 있는 신상훈 신한지주 사장은 일단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신한지주의 내분 사태와 관련해 조직 내외에서 ‘동시책임론’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백순 신한은행장의 경우 일부 재일동포 주주들로부터 행장 직무정지 소송을 당한 데다, 재일동포 주주에게 받은 5억원을 둘러싼 잡음 탓에 운신이 썩 자유롭지 않다. 재일동포 주주들 가운데 이 행장에 대해 내분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이에 따라 신한 외부에서 차기 회장을 영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경우 KB금융지주가 했듯이 외부 공모 절차를 밟아 영입하는 방안이 유력시된다.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그룹을 경영해본 경험, 신한 내부 사정에 대한 이해력, 사회적인 명망, 정부나 감독당국과의 부드러운 관계 등이 결정적인 조건이 될 전망이다. 출신 지역도 무시 못할 요건이다.

현재 이 ‘스펙’에 맞는 인물로는 신한 외부에서는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와 류시열 신한지주 비상근이사(전 제일은행장), 신한 내부에서는 이인호 신한지주 전 사장의 이름이 거론된다.

◆징계 통보 왜 앞당겼나=정무위는 오는 12일과 22일 금감원에 대한 국정감사를 할 예정이었다. 금감원은 신한의 내분 사태가 국정감사에서 핵심 문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큰 만큼 어느 정도 결론을 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론을 미루다가는 금감원의 공신력에도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라 회장이 지난 3월 4연임을 하는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적격성 심사를 제대로 했느냐도 논란이 될 가능성도 있다.

라 회장에 대한 징계 통보는 시작에 불과하다. 금감원은 다음달 신한은행에 대한 정기검사에 착수한다. 라 회장의 실명제 위반 의혹 이외에 지금까지 제기된 각종 의혹을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지금까지의 어떤 검사보다 강도 높게 진행될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전망이다. KB금융과 같은 대량 징계 사태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 이미 최고경영진이 모두 불투명한 자금을 조성해 썼다는 의혹에 연루돼 있고 신한은행 비서실이 조직적으로 차명계좌를 관리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는 신한은행의 공신력에도 큰 타격을 줄 전망이다.

 김원배·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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