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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깊이읽기] 내 집을 차지한 이방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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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내 집을 차지한 이방인
원제 Strangers in the House
라자 샤하다 지음, 유혜경 옮김, 책씨
312쪽, 1만1800원

'세계의 화약고'라는 별명에 걸맞게 중동 관련 국제 뉴스의 헤드라인은 테러와 전쟁 소식으로 넘쳐 난다. 그와 달리 이 책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의 70%를 차지한 이후에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을 담담한 어조로 보여주고 있다.

책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라말라에서 1948년에 태어난 저자의 다큐멘터리식 자서전이다. 48년은 이스라엘이 건국됐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 첫 전쟁이 벌어진 해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는 저명한 변호사였으며, 그 역시 영국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인권변호사로서 오랫동안 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의 법률고문으로 활동해 왔다.

저자에 따르면 중동 분쟁의 한 가운데서 살아가는 이들의 정서는 한마디로 상실감이다. 자신들의 땅이었던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지지구에서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이들의 심정은 특히 더하다.

▶ 이스라엘 보안요원이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 엘카나의 유대인 정착촌에서 콘크리트 보안장벽 옆을 순찰하고 있다. [중앙포토]

책은 저자의 아버지 아지즈 샤하다의 불행이 큰 줄기를 형성한다. 아버지의 일생은 저자의 삶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1차 중동전쟁이 벌어질 무렵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통치 밑에서 살기를 거부하고 주변의 아랍국가로 피난하는 와중에 아버지 아지즈는 고향에 머물기로 결심한다. 게다가 60년대 말부터 아버지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공존을 주장했다. 이는 64년 아라파트가 고향을 떠난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중심으로 결성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투쟁 노선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길이다.

그런 평화주의자였던 아버지가 85년 고향에서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아랍 과격단체의 소행이란 추측성 보도가 나왔지만 정작 이스라엘 경찰의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스라엘 경찰이 사건의 전모를 밝혀주리라는 그의 기대가 물거품으로 돌아가면서 평화에 대한 그의 희망은 절망으로 변해갔다.

그는 "아버지가 아무리 평화적인 정치를 추구했다해도, 이스라엘에겐 협력자가 더 중요했으며, 이스라엘의 이익을 위해선 그 협력자를 보호하는 일이 살인범을 쫓는 일보다 더 중요했다"고 말한다. 87년 인티파타(팔레스타인의 반이스라엘 항거운동)가 시작될 때 저자가 평화의 길 대신에 집단투쟁 지지자로 변신하게 되는 배경이다. 정치적 강경파간의 이익 다툼 속에서 최소한의 평화와 질서를 추구하려는 이들의 절망감을 실감하게 하는 책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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