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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 짧다” 학생 지적하자 교육청에 교사 신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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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 경기도 남양주시 A중학교 교사들은 요즘 학생생활지도 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2학기가 시작된 이후 머리를 기르고 염색을 하거나 파마를 한 학생들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교복을 마음대로 변형시켜 입는 학생도 늘어나면서 일부 학부모들은 “제발 두발·복장 검사를 해달라”고 학교에 항의하고 있다.

그러나 교사들이 아무리 주의를 줘도 학생들은 오히려 “학생인권조례에 머리 모양과 복장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다”고 대꾸하기 일쑤다.

학생생활지도 담당 정모 교사는 “원래는 2~3개월에 한 번씩 복장·두발 검사를 했는데 도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가 통과한 이후에는 계속 하지 못했다”며 “이런 문제가 계속되면서 학교, 학부모, 교사 간의 갈등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 용인시 B고교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말 한마디 건네기가 두렵다. 지난달 말 복장지도를 하던 교사에게 ‘치마가 짧다’고 지적받은 여학생이 도교육청 홈페이지에 ‘남자 교사가 여학생을 주먹으로 때리고 욕을 했다’고 글을 올린 것이 원인이다.

B고교 관계자는 “당시 지적받은 학생이 ‘인권조례’ 운운하며 반항적으로 대꾸해 해당 교사가 욕설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았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교사들은 학생지도를 할 수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내년 3월 학생인권조례 시행을 앞두고 경기도 각급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학생들은 지난달 17일 도의회를 통과한 인권조례를 근거로 벌써부터 두발 규제나 소지품 검사 등을 거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학교 측은 도교육청의 지침이 내려오기 전까지 기존 교칙대로 학생지도를 강행해 곳곳에서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국에서 처음 제정된 경기도 학생인권 조례는 체벌 금지를 비롯해 ▶강제 야간자율학습·보충수업 금지 ▶두발과 복장 개성 존중, 두발 길이 규제 금지 ▶소지품 검사 때 학생 동의 ▶수업시간 외 휴대전화 소지 허용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각 학교에 학생인권심의위원회와 학생인권옹호관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학생들은 조례가 도의회를 통과하자마자 도교육청 홈페이지 등에 글을 올리고 있다. 첫 2주 동안 20여 건의 글이 올라왔는데 대부분 “시행 시기를 앞당겨 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장 두발·복장·소지품 검사 등을 거부하자는 선동성 글도 있었다. 이 때문에 일선 학교에서는 적극적인 학생지도를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도 불만이다. 학교를 사랑하는 모임 경기지부 이병도 대표는 “학생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학생의 본분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학생들이 인권조례를 ‘맘대로 행동해도 되는 것’이라고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이에 대한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러니 아예 인권조례 시행이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윤완 경기도교직원총연합회 교육정책위원장은 “학생인권 존중에는 이견이 없다”며 “그러나 체벌을 제한적으로 허용한 상위법(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상충되고 아직 실효성 있는 대체 방안을 내놓지 않은 상황에서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도교육청 학생학부모지원과 유선만 과장은 “현재 교사와 학생을 상대로 학생인권조례의 정확한 취지를 알 수 있도록 하는 연수와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며 “체벌 금지 등에 따른 대안도 마련해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한편 도교육청은 5일 오전 9시 수원 청명고에서 ‘학생인권조례 및 학생인권의 날(10월 5일) 선포식’을 열고 내년 3월부터 본격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수원=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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