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누구를 위한 세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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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아무리 문화와 예술이 독특한 분야라 해도 이건 아니다. 국립극장 직원들의 연평균 휴가일수가 98일이나 되고, 일부 단원은 단 한 번도 공연에 출연하지 않은 채 4400여 만원의 연봉을 받았다고 한다. 국립극장 전속 단체의 단원들 상당수가 극장장의 승인 없이 무단 겸직하거나 외부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국립극장은 노사갈등으로 툭하면 공연을 중단하거나 지연시킨다. 예술에 무지한 일반 국민들의 눈에도 기강 해이와 방만 경영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행정안전부의 혈세(血稅)에 대한 인식도 문제다. 행안부는 9억원에 가까운 비용을 들여 아직 수습 딱지도 떼지 않은 사무관 344명을 해외 정책연수를 보냈다고 한다. 국내 정책에도 생소한 수습 사무관들에게 왜 해외 정책부터 견학시켜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여기에다 연수 일정의 상당수는 코끼리 쇼나 해양스포츠, 만리장성 관광 등 ‘놀고먹기식’ 행사로 채워졌다고 한다. 갓 사무관이 된 젊은 공무원들이 국민 세금으로 흥청망청 즐기는 것부터 배운다면 이 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행안부에 묻고 싶다.

또한 응급구조헬기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지방자치단체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325억원을 지원받아 구입한 8대의 응급헬기들은 최근 5년간 응급환자 이송에 투입된 비율이 13%에 그쳤다. 상당수가 지자체의 홍보활동과 업무지원에 투입됐다. 심지어 단체장들의 승마대회나 TV토론회 참석, 전 대통령 생가 방문 등에도 투입됐다고 한다. ‘원님’들이 응급헬기로 행차하면서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궁금하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비뚫어진 혈세 유용(流用) 관행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정감사의 본질도 정치 공방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따지는 데 있다. 많은 국민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피땀을 흘리며 번 돈으로 세금을 내고 있다. 예술한답시고, 행정고시 합격했다고, 도지사들에게 헬기를 타면서 폼 잡으라고 세금을 내는 게 아니다. 국회는 한층 눈을 번득여 국정을 감시하고, 세금을 낭비한 공무원들에겐 추상(秋霜) 같은 문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