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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밴드, 수묵화, 시, 시나리오 … 영화까지 접수 나선 ‘팔방미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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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남자의 심리를 남자보다 더 잘 그린 시나리오에 매료돼 출연을 결정했다”는 김영호. “예술영화든, TV 통속 드라마든 장르를 불문하고 흡입력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조용철 기자]

홍상수 감독의 ‘남자’부터 TV 아침드라마의 주인공까지. 김영호(43)의 연기 폭은 상당히 넓다. 스스로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라는 평이 가장 듣기 좋다는 그가 또 한번 저예산 예술영화 주인공에 도전했다. 프랑스 영화학 박사 출신 성지혜 감독의 본격 연애담 ‘여덟 번의 감정’이다.

그가 맡은 종훈은 수컷 기질을 못 벗는 갤러리 큐레이터. 결혼을 앞둔 연인 선영(황인영)이 있음에도 우연히 재회한 간호사(윤주희)에게 맘을 뺏기고 결별을 선언하는 등 갈팡질팡한다.

“시나리오가 좋아서 출연을 결정했어요. 여자들 눈엔 종훈이 그저 양다리를 걸치는 바람둥이일지 모르지만, 끊임없이 제 짝을 찾아 헤매고 정작 제 짝이 나타나도 몰라보는 남자의 심리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거든요. 다시 선영을 찾아간 종훈이 솔직하게 사과를 못하고 ‘외계인’ 운운하는 대사가 있어요. 제가 지금껏 본 시나리오 중 최고의 대사였죠. 이런 대사를 쓸 수 있는 감독이라면 같이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작비 8000만원의 영화에 노개런티 출연을 결정한 그는 상대 배우 캐스팅, 장소헌팅 등에도 적극 참여했다. “소속사에도 미안해 진행비 안 받고 매니저 없이 제가 직접 차를 몰고 현장에 갔어요. 연출부 겸 제작부라고 생각하고 일했지요. 이런 좋은 시나리오와 재능 있는 감독을 묵히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요.”

극중 종훈의 승용차는 실제 그의 차다. 차 한 달 임대료만 제작비의 10%에 달해 그냥 자신의 차를 쓰게 했다. 그런 그에게 감독은 “최악의 상황을 최고로 만들어줬다”며 각별한 감사를 표했다.

전형성을 벗어난 일상적인 캐릭터라 연기적인 어려움도 많았다는 그는 “홍상수 감독 영화를 한 것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주로 상업적인 영화와 드라마만 하다가 홍 감독의 ‘밤과 낮’‘하하하’를 하면서 나에게 이런 모습도 있구나, 새롭게 발견했지요. 다큐적인 연기에 눈떴다고 할까요.”

종훈이야말로 말투 등이 실제 자신과 가장 닮아있다는 그는 항상 100% 남성을 연기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실제로도 여성스러운 면은 0%도 없는, 남자 그 자체”라고 자기를 소개한다. 현재 MBC 아침드라마 ‘주홍글씨’에 출연 중인 그는 “아직 대중적 호응도가 낮고,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몸은 깡패 수준이지만, 어느 장르에서든 오직 진실성으로 흡입력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른바 ‘종합예술인’이기도 하다. TV데뷔 이전 연극·뮤지컬을 하면서 록밴드 활동도 했다. 부활의 김태원과도 친분이 깊다. 영화 ‘미인도’ 때 배운 수묵화 전시회도 열었으며, 24년간 써온 시집 출판 제의도 받고 있다. 직접 시나리오를 쓴 영화연출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데뷔작 ‘여름이 가기 전에’에서 사랑에 빠진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렸던 성 감독은 두 번째 영화 ‘여덟 번의 감정’에서 남자보다 남자의 심리를 더 잘 안다는 평을 받았다. 부산 동서대에서 제작비·장비·인력 등을 지원받았다. 지난달 3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글=양성희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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