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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38층 아파트 화재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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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일 오전 11시33분쯤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우신든스위트 주상복합건물 4층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 최고층인 38층까지 번졌다. 뒤편으로 보이는 섬이 동백섬이다. [부산일보 제공]

“화재에 취약한 고층 아파트의 문제점이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1일 오전 11시33분쯤 부산시 해운대구 마린시티 내 주거용 오피스텔인 우신골든스위트 아파트 4층에서 난 화재를 두고 부산 금정소방서 이갑진(56) 예방안전과장이 한 말이다. 그는 이날 현장에서 화재 진화를 지휘하며 느꼈던 문제점을 그대로 쏟아냈다. 이번 화재에서는 주민 37명이 구조됐고 나경민(22)씨 등 4명은 연기를 마시거나 부상을 당해 응급치료를 받고 모두 퇴원했다. 이중 부산 소방본부 소속 고영대(43) 구조팀장은 입술 등에 상처를 입었다. 큰 불길은 오후 1시49분쯤 잡혔지만 완전 진화는 오후 6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불길이 처음 치솟은 4층 상가와 37~38층 3가구가 모두 불탔다. 국내 화재사건 중 최고층 아파트 화재로 기록돼 ‘한국판 타워링’이란 말도 나온다.

지하 4층에, 지상 38층(202가구)으로 사무실보다는 대부분 거주 목적으로 분양된 부산의 대표적인 고급 아파트며 2006년 5월 입주가 시작됐다. 화재 원인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지만 불은 4층 미화원 작업실 분리수거실에서 난 것으로 화재감식팀은 확인했다. 경찰은 "화재 당시 ‘펑’ 소리가 났다”는 목격자의 말과 "4층 작업실에서 평소 폐지를 태웠다”는 입주민들의 진술을 확보했다. 이 건물 4층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일반 저층 아파트였다면 층마다 있는 발코니가 불길 차단 역할을 해 불이 위층으로 번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고층인 이 아파트는 달랐다. 발화한 지 30여분 만에 꼭대기 층까지 불길이 올라갔다. 이 건물은 외관을 살리려 외벽 마감재로 황금색 알류미늄 패널과 유리를 사용했는데 이들이 불길을 위층으로 옮기는 역할을 한 것이다. 철골철근콘크리트 구조의 건물에 주로 이 공법을 많이 사용하는데 ‘H빔’이나 벽면에 약간의 공간을 두고 패널을 붙이는 방식이다. 지진에는 강하지만 화재에 취약한 게 단점인데 이번 화재에서 문제점이 그대로 노출됐다.


특히 알루미늄 패널은 바깥 부분을 특수 페인트로 칠해 색을 내는데 이 페인트가 불길을 옮기는 역할을 한다는 게 건설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이 아파트는 단열재로 유리섬유를 패널과 콘크리트 외벽 사이에 사용했는데 이런 단열재도 화재에 취약하다. 불이 4층에서 발화한 후 ‘V’자 모양을 그리며 위쪽으로 확산됐는데 건물 외벽을 둘러싼 알루미늄 패널과 건물 내부의 단열재가 불길을 위쪽으로 옮기는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 과장은 고층 건물의 화재 대책으로 30층마다 한 층을 통째로 비워 화재 피난구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재 피난구역에는 가압소화전을 설치해 화재 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화재가 난 아파트에는 피난구역이 없었다.

현장에서 화재를 지켜보던 한 가족이 떨어지는 잔해를 피하고 있다. [MBC화면 캡처=연합뉴스]

소방장비도 고층 아파트 화재에는 역부족이었다. 불이 나자 소방당국은 소방차와 고가사다리 등 진압차량 60여 대와 헬기를 동원, 진화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고층인 데다 물을 주입할 마땅한 공간이 없고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37, 38층까지 올라간 불길을 잡기 위해 헬기가 물을 쏟았지만 물은 건물 내로 스며들지 못했다. 이 때문에 아파트 옆동에서 물을 뿌려야 했고 진화는 더딜 수밖에 없었다.

20여 대의 고가사다리차도 15층밖에 도달하지 않아 16층 이상의 화재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화재가 난 건물은 유리로 밀폐된 건물이어서 소방차가 외부에서 물을 뿌릴 수 없었다. 소방관들이 38층을 한 층씩 뒤지고 다니며 확인했으나 외부에서는 진화작업을 하지 않는다며 주민들이 항의를 하기도 했다. 건물 미관을 고려해 두 동의 건물 사이를 띄워놓는 독특한 설계도 진화를 어렵게 했다. 바닷가 해풍이 건물 사이 공간으로 지나가면서 골바람 역할을 해서 불길을 키운 것이다. 김종규 해운대 소방서장은 “건물 사이에 난 틈새로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골바람을 형성해 불길을 위로 치솟게 한 것이 화재가 커진 원인”이라고 말했다.

부산=김상진·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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