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마존의 성녀'스탕 수녀 피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브라질 아마존 정글의 가난한 농민들에게 그는 빛과 같은 존재였다. 농민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기 위해 몸바쳐 일하는 그를 '아마존의 성녀(聖女)'라고 불렀다. 한평생을 아마존의 환경보전과 농민운동에 바친 도로시 스탕(74.사진)수녀는 12일 한 농장에서 등 뒤로 날아온 세 발의 총탄을 맞고 숨졌다.

영국의 일간 더 타임스는 스탕 수녀가 현지 농장주인들과 불법 벌목업자들이 고용한 이들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고 14일 보도했다. 스탕 수녀에게 총격을 가한 두 남자는 그가 쓰러진 뒤에도 그의 얼굴에 네 발의 총알을 더 쐈다. 스탕 수녀가 닐마리오 미란다 인권부 장관을 만나 "농장주들이 아마존에서 벌이고 있는 폭력을 줄여달라"고 당부한 지 일주일 만에 발생한 참사다.

미국 오하이오주 노틀담 수녀회 출신인 스탕 수녀는 1960년대부터 브라질에서 살았다. 아마존은 땅이 없는 가난한 농부들과 농장을 만들기 위해 불법 벌목하려는 땅주인들이 끊임없이 싸우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피살된 아마존 파라주(州) 지역은 그중에서도 갈등이 가장 심각한 곳이다.

스탕 수녀는 아마존 정글에서 노예처럼 일하고도 빚더미에 앉는 농민들의 권익을 위해 농장주들과 맞서 싸웠다. 또 아마존 주민들이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하는 프로젝트에도 앞장섰다. 그러나 불법으로라도 벌목하려는 농장주들의 살해 위협이 끊이지 않았다. 수녀는 "나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지만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며 "내가 있을 자리는 강한 자들로부터 끊임없이 굴종을 강요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바로 이곳"이라고 말했다.

미란다 실바 환경부 장관은 "스탕 수녀는 아마존 정글 인권 투쟁의 상징이며 전설"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파라주 법원의 증인보호프로그램도 거부한 채 법원에서 농장주와 불법 벌목업자들의 횡포를 증언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스탕 수녀는 지난해 브라질 변호사협회로부터 인권상을 받은 바 있다.

스탕 수녀의 피살 소식이 알려지자 브라질 신문들은 여러 면에 걸쳐 그녀의 삶과 죽음을 자세히 보도했다. 브라질에선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실바 대통령은 환경부 장관에게 이번 사건의 진상 조사를 지시했다. 룰라 대통령은 땅 없는 농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파라주 지역의 농지 분쟁이 한계수위를 넘고 있다고 판단, 15일 8개 부처 관계장관이 참석하는 대책회의를 열기로 했다.

이은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