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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재산 애국가' 인정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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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애국가를 둘러싼 네티즌의 논란이 뜨겁다. 최근 문화관광부가 애국가 저작권을 작곡가 안익태 선생의 유족으로부터 일괄 구입해 달라고 행정자치부에 요청한 것을 두고 옥신각신하고 있다. 대다수는 문화부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문화부 홈페이지 '나도 한마디' 코너에는 원색적 비판이 즐비하다. '정부는 매국노' '애국가를 새로 만들자'는 극언마저 나온다.

사실 이번 논쟁은 애국가에서 시작된 게 아니다. 지난해 말 작곡.작사자는 물론 실연자(가수.연주가)에게도 전송권을 부여한 저작권법 개정안이 발효하면서 음악파일을 주고받거나, 블로그에 올리는 게 불법으로 알려지자 이에 반대하는 일부 네티즌이 애국가를 들고 딴죽을 걸고 나왔다. 국민의 재산인 애국가를 돈을 내고 써야 하느냐고 불평했다.

일정 부분 수긍이 간다. 지금까지 문제없이 사용했는데-애국가 파일을 교환하거나 블로그에 올린 경우가 얼마나 될지는 둘째 치고-갑자기 '범죄자'로 몰리고, 돈마저 내야 하니 좀 과장해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일 수 있겠다.

그러나 애국가의 파일교환은 예전에도 분명 불법이었다. 저작권은 친고죄에 해당돼 안익태 선생의 유족이 피해사실을 입증하고(사실 매우 어려운 과정이다), 또 고발조치를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애국가는 현재 '국민의 재산'이 아닌 '안익태 유족 개인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유족 측이 1992년 애국가 저작권을 음악저작권협회에 신탁한 게 단적인 예다. 이번 논란이 '아닌 밤중의 홍두깨'가 아닌 것이다.

이번에 기자도 배운 게 있다. 우리 정부가 애국가를 공식 제정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애국가는 48년 정부가 수립되면서 국가로 채택됐고, 이후 교과서에 실리면서 국가로 인정받았다. 이른바 관습헌법.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국가로 제정하였다'는 두산대백과사전의 설명은 수정돼야 한다.

애국가 저작권 논쟁은 5년 전 연극 '마르고 닳도록'에서 다뤄진 적이 있다. 안익태 선생의 국적이 스페인인 점을 알아챈 스페인 마피아가 가짜 유족을 만들면서까지 한국정부에 저작권 사용료를 요구하다가 결국 꼬리를 내리고 도망친다는 유사(類似) 다큐멘터리였다.

연극에서 마피아는 30여년간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 정부를 접촉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낭패를 당한다. 광주 민주화 현장에서 최루탄 가스에 눈물을 삼키고, 삼풍백화점 붕괴로 대원을 잃고, 한국이 외환위기에 빠지자 빈손으로 돌아간다. 그들 마피아가 오늘 다시 한국에 온다면 네티즌의 몰매를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애국가는 서구 근대사회의 산물이다. 군주에 대한 충성과 국가에 대한 헌신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됐다. 일제시대 한국에선 나라를 되찾으려는 열정의 동의어였다. 36년 독일에서 애국가를 완성한 안익태 선생이 당시 열린 베를린올림픽 현장에서 손기정씨를 비롯한 한국(?)선수 7명과 함께 응원가로 불렀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은 문화, 개인의 시대다. 극장에 애국가가 울리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야 했던 상황을 우울해했던 시인 황지우가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발표한 지도 20년이 훨씬 지났다. 태극기도 패션소품으로 빌려 쓰는 사회이지 않은가.

국가의 상징물보다 개인의 재산권을 존중하는 게 달라진 시대의 징표다. 일부에선 유족 측에게 저작권 포기마저 요구한다. 그건 40년 전 이역에서 쓸쓸히 숨진 안익태 선생을 '두 번 죽이는' 일이 아닐까.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 검토해 보겠다"는 행정자치부가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지….

박정호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