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보유 공식선언] "북한 자금 유입 차단…미국, 경제압박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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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행정부 내에서 북핵 문제와 관련, 대북 압력 수위를 높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미 언론들은 "일부 당국자가 북한에 대한 경제적 압력을 높이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지 사흘이 흘렀다. 그러나 미국은 겉으로는 여전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12일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 북핵 문제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다른 기류가 흐르고 있다.

◆ 경제 봉쇄에 5자회담 개최=뉴욕타임스는 12일 "부시 행정부가 외교적 해결을 주장하는 와중에서도 일부 당국자는'북한에 흘러들어가는 자금을 차단하는 등의 새로운 경제 압박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도 같은 날 "이제는 한국.중국에 (대북 압박을 가중토록) 압력을 높일 때라는 데 정부 관계자들이 모두 동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산케이 신문은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 개최안이 미 정부 내에 부상 중"이라고 13일 보도했다. "북핵은 절대 안 된다"는 5개국의 일치된 목소리를 과시해 압박 수위를 높인다는 것이다. 신문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이 핵보유를 선언하기 전부터 5자회담을 은밀히 검토해 왔다. 그러나 북한의 반발을 우려해 4개국에 공식 제의하지 못했었다는 것이다. 이제 북한이 핵보유를 선언한 만큼 5자회담안은 상당한 탄력을 받게 됐다고 신문은 전망했다.

◆ 배경과 전망=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말려들 필요가 없다는 미국의 입장은 확고하다. 그러나 북한의 핵보유 선언은 부시 행정부로서는 망신이다. 정부 내 강경파와 야당.언론의 비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6자회담 고수라는 외교적 해결 틀을 유지하되 어떤 형태가 되든 가시적인 압박 수위를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의 동조 여부가 변수다. 이미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상황이 악화되지 않는 한 대북 경협을 지속할 것"이라며 경제 압박에 반대의사를 밝혔다. 중국도 "6자회담이 지속돼야 한다"며 북한을 회담장에 끌어내는 노력을 우선할 것임을 내비치고 있다.

미국에는 강경책만 고집한 끝에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비판도 부담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의 선언 여파로 미국이 6자회담에서 더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는 압력이 가중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6자회담이 김빠져 새 접근법이 필요한 지금 북한의 선언이 그 (새 접근법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미국의 대북 압박 강화 여부는 14일(현지시간) 한.미 외무장관 회담 및 이번주 중으로 예상되는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당 대외연락부장의 방북 이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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