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실버산업, 우리에게도 좋은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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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고령화에 관해 항상 눈여겨봐야 할 곳은 일본이다. 9월 15일 현재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전년 대비 0.4%포인트 증가한 23.1%에 달한다. 특히 80세 이상이 처음으로 800만 명을 넘어서(826만 명)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6.5%에 이르렀다(일본 총무성 발표). 이런 유례없는 고령화가 재정운용 등에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새로운 성장산업의 출현 기반이 되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

일본 미쓰비시종합연구소가 올 4월 60~89세 46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70대 후반부터 신체 능력과 기호가 크게 바뀌고 소비 경향도 변하기 때문에 이에 적절히 대응한 상품·서비스를 만들어내면 상당한 수요가 예상되고 이는 일본의 성장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니혼게이자이신문 2010년 8월 6일자)했다.

이 조사에서 드러난 잠재수요는 다양하고 규모도 크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떨어지는 신체 기능을 개선하는 데 얼마나 지불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팔다리는 평균 18만 엔(약 245만원), 시력에는 13만 엔(약177만원)을 쓸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이를 확대할 경우 각종 증상 개선의 잠재수요는 8조 엔(약 108조원)에 달했다. 주거생활과 관련해서는 고령층의 60~70%가 현재의 집에 살고 싶다고 답했는데 이 중 방·욕실·현관 문턱 등은 고치고 싶다는 답이 적잖았다. 개·보수 비용(평균 290만 엔, 약3900만원)이나 주거 교체의 잠재수요는 5조8000억 엔(약 79조원)에 이를 것으로 봤다. 여기에 체형이나 감각에 맞는 옷, 간편식이나 식사 택배, 여가활동 등 다른 부분을 합쳐 추계한 잠재수요는 20조 엔(약 272조원) 이상. 응답자들이 기존 상품·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지불 의사를 밝혔으리란 점을 감안하면 혁신적인 상품·서비스가 출현할 경우 잠재수요는 더욱 커질 것으로 연구소는 판단했다. 이미 형성된 고령층을 위한 의료·보건·요양과 의식주 등 기존 시장 규모가 10년 후 100조 엔(약 136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여기에 새로운 잠재수요가 현실화될 경우 일본 한 곳에만도 현재 한국의 국내총생산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엄청난 고령층 시장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고령화의 정도나 소비수준은 다르지만 중국·인도에도 거대한 시장이 생길 것 또한 분명하다.

가장 먼저 초고령화 사회를 겪고 있는 일본에서, 초유의 체험을 독보적 장점으로 살려 새로운 성장 포인트로 삼자고 나서는 것은 일리 있고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8년 후면 65세 인구 비중이 14%를 넘어서는 고령사회, 16년 후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 진입이라는 초고속 고령화가 진행 중인 우리로서도 놓쳐서는 안 될 대목이다. 고령화와 관련, 산업적 측면에 눈 뜬 것은 좋지만 우리의 논의 수준은 초보적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 서둘러야 우리도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박태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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