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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권 잡고 대선 가겠다” vs “식당 안 되면 주방장 바꿔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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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호 06면

10·3 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8명의 후보들. 사진 왼쪽부터 정동영·정세균·최재성·박주선·천정배·이인영·손학규·조배숙 후보(기호순). [중앙포토]

10·3 민주당 전당대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르고 있다. 이번 전대는 특히 이명박 정부 임기가 반환점을 돈 시점에 ‘제1야당호’를 이끌 선장을 뽑는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8명의 후보는 치고받는 난타전 속에 막판 표심 잡기에 나섰다.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중앙SUNDAY가 후보들과의 면담, 각 캠프의 판세 분석 등을 종합해 종반으로 치닫는 민주당 전대의 4대 관전 포인트를 정리했다.

막판 표심 잡기 뜨거운 10·3 민주당 전당대회

1 3강 구도 허물어지나
지난 몇 달간 민주당에서 ‘빅3’라는 단어는 고유명사처럼 쓰였다. 정세균 전 대표와 손학규·정동영 고문이 3강 체제를 형성하며 한 치의 양보 없이 팽팽히 맞서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추석 연휴를 지나면서 강자의 카르텔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세 캠프 모두 “2강 체제로 재편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2강이 누구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손학규 캠프는 “정세균 후보에서 빠진 표가 정동영 후보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손학규-정동영 양자 구도가 정착됐다”고 주장했다. 손 후보는 “한나라당 출신이란 핸디캡도 어느 정도 극복돼 가고 있다”며 “당권을 잡고 조직을 만들어 대선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정동영 캠프도 “모든 여론조사에서 양강 구도가 확인되고 있다”며 “정동영 후보와 손학규 후보가 1등과 2등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세균 후보 측도 즉각 반격에 나섰다. 추석 직후인 23일 실시한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하면서다. 한 측근은 “정세균-정동영 두 후보가 박빙의 차로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고 손 후보는 한참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며 “정세균 대세론을 견제하기 위해 다른 두 후보가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다른 측근은 “프림과 설탕은 밑에 깔려 있는데 위에서 한 스푼 뜬다고 그 커피의 진정한 맛을 알 수 있겠느냐”며 “남은 일주일간 우리 측 대의원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45곳 지역위원장의 절반이 넘는 130명을 확보해 놓았고 이 중 ‘성골’만 90명에 달한다”며 “친노와 486, 중진 의원 그룹과 구민주계가 4각 축을 형성해 지지 기반이 탄탄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손 후보 측은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논란이 많지만 경향성은 무시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우리도 80명가량 확보했고 일반 여론의 지지도 여전히 높다”고 주장했다.

세 후보 측 모두 정동영 후보를 2강에 올려놓은 점도 눈에 띈다. 당초 정 후보는 3강 중 약체로 분류됐다. 대선 패배와 탈당 등의 전력이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 후보는 “당의장 선거와 대선 후보 경선을 치르면서 다져 놨던 바닥 조직이 거의 다 복원됐다”며 “이명박 정부에 맞서 강한 민주당을 이끌 적임자가 누구냐가 최종 판단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위원장도 50명 이상 확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손 후보 측도 “민주당이란 세 글자만 빼고 다 바꾸자는 정동영 후보의 주장이 대의원들의 표심을 자극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세 후보가 양강 구도에 집착하는 이유는 ‘넘버3’의 비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다. 1위를 하면 가장 좋겠지만 2위만 해도 1위를 견제하며 자기 정치의 공간을 확보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3등은 말 그대로 넘버3다. 존재가치도 확 줄고 당내 입지도 위축되면서 4~6등과 함께 마이너리거로 취급될 공산이 크다. 후보 토론회를 거듭할수록 난타전이 가열되고 네거티브 공방이 치열해지는 것도 이런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막판 변수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정세균 후보의 조직력이 저력을 발휘할지, 손학규 후보의 여론몰이가 실제 표로 연결될지, 정동영 후보의 바닥 훑기가 투표일까지 효력을 이어 갈지 등이 그것이다.

2 486 정치 실험 성공할까
넘버3가 빅3에겐 재앙인 반면 이인영·최재성 후보 등 486 주자들에겐 복음과도 같다. 빅3 중 한 명을 제치는 순간 일약 스타로 도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웅할거하는 486의 새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광재·안희정 지사와 송영길 시장이 형성하고 있는 486 차기 주자군에 이름을 올릴 수도 있다. 최 후보가 486그룹의 단일화 압력을 뒤로하고 완주를 택한 것도 이처럼 달콤하고도 강력한 유혹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아직까진 모든 여론조사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단일화가 성공했다면 3위도 가능했겠지만 지금은 위력이 많이 반감된 게 사실”이라며 “일반인 대상 선거와 달리 철저하게 조직투표로 이뤄지는 전대 특성상 바람에만 의지하기엔 한계가 뚜렷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양강 구도를 주장하는 빅3 캠프들도 486의 넘버3 가능성엔 회의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박주선 후보는 “486은 깨끗함과 믿음이 생명인데 단일화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믿음이 깨져 버렸다”고 평가절하했다. 천정배 후보도 “진작 당 쇄신에 앞장섰어야 했는데 계파의 그늘에 안주하다가 너무 늦게 치고 나왔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486 단일 후보로 추대된 이인영 후보는 “대의원들을 만나 보면 변화의 요구가 분명히 있고 새로운 사람이 그 변화를 이끌어 줬으면 하는 기대감도 크다”며 “조직으로 치러지는 전당대회에서 가치와 비전을 중심으로 얼마나 모일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전망했다. ‘7월 한나라당 전당대회 때 개혁 후보로 나섰다 고배를 마신 김성식 후보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질문엔 “대의원과 당원을 믿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길밖에 없다”며 결의를 다졌다.

넘버3를 향한 박주선·천정배 후보의 추격도 거세다. 박 후보는 “기존의 빅3로는 안 된다는 게 이미 입증되지 않았느냐. 식당이 안 되면 주방장을 바꿔야 하는 법”이라며 “대선 주자들이 당권을 징검다리로 삼는 건 민주당을 사당화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천 후보도 “민주당을 확 바꿔야 한다는 민심이 대세”라며 “어떻게든 지도부에 입성해 제대로 된 정치를 한번 해 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 호남 민심, 누구 손 들어줄까
민주당의 주된 지지 기반은 누가 뭐래도 호남이다. 당권을 거머쥐려면 호남 민심을 사로잡아야 하는 건 불문가지다. 민주당 전대에서 호남 민심의 위력은 절대적이다. 전국 대의원들 표심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대의원들도 대부분 호남 출신이거나 영향권 아래 있는 경우가 많아 고향의 여론에 촉각을 세우게 마련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국민경선에서 깜짝 스타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도 ‘광주의 선택’ 덕분이었다.

현재까지 대체적인 표심의 흐름은 손학규·정동영 후보의 강세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11~23일 세 차례 실시한 대의원 여론조사를 보면 광주·전남은 손학규·정동영 후보 강세에 박주선·정세균 후보 추격, 전북은 정동영·정세균 후보 강세에 손학규 후보 추격 양상을 띠고 있다.

변수는 호남 대의원들의 성향이 고도로 정치적이란 점이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지지 성향을 숨기며 전국의 여론을 주시한다. 각 캠프 여론조사에서도 호남 지역 응답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면서도 그들끼리는 수시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모든 후보가 끝까지 호남 민심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도 이 같은 속성 때문이다.

호남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후보는 손학규 후보다. 손 후보 핵심 측근은 “대권은 (비호남 출신에게) 줘도 당권은 못 준다는 게 지금까지 호남 대의원들의 일반적 정서였다”며 “손 후보가 이 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가 이번 전대의 최대 승부처”라고 진단했다. 손 후보가 추석 내내 광주·전남에 상주하다시피 한 것도 이때문이란 전언이다.

정동영 후보 측은 “최근 몇 년 새 호남 대의원 분포가 별로 바뀌지 않아 예전에 정동영을 찍던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우세를 자신했다. 정세균 후보 측도 “호남 지역위원장은 우리가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는 만큼 결국엔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인영 후보는 “늘 미래를 내다본 호남의 현명한 선택을 믿는다”며, 천정배 후보는 “제2의 노무현을 만들어 달라”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4 후보 간 짝짓기 최대 수혜자는
이번 전대는 1인2표제다. 대의원 한명이 후보 두 명을 찍는 방식이다. 1순위 표와 2순위 표의 가중치는 똑같다. 이 때문에 아무리 1순위 표를 많이 얻어도 2순위 표를 공략하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 합종연횡과 짝짓기가 불가피한 까닭이다. 8명의 후보끼리 얽히고설킨 전략적 연대는 고난도의 고차방정식을 방불케 하고 있다.

짝짓기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자신의 약점을 커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또 지지 기반이 겹치지 않아야 연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정세균 후보는 최재성·이인영 후보 등 486그룹과 한 배를 타기로 했다. 손학규 후보는 박주선·이인영 후보를 놓고 고민 중이다. 호남과 486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심산이다. 정동영 후보는 천정배·박주선 후보 등 쇄신연대 그룹과 연대, 여성 몫으로 이미 지도부 입성이 확정된 조배숙 후보와 혁신 지도부를 구성하겠다는 복안이다.

연대 구성표에서 보듯 짝짓기의 블루칩은 단연 박주선·이인영 후보다. 박 후보는 24일 기자들의 잇따른 문의 전화에 “나는 지도부 입성만을 위한 짝짓기는 안 한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모든 후보와의 연대 가능성을 끝까지 열어 두겠다는 의미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인영 후보는 후보 간 연대 추이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기능적 짝짓기가 결과적으론 민심과 당심을 왜곡할 수 있다”며 경계감을 나타냈다.

1인2표제는 또한 배제의 정치다. 한 후보 측근은 “대의원들이 1순위 표는 지역위원장의 뜻에 따르더라도 2순위 표는 개인 선호에 따라 찍는 경향이 강하다”며 “2표를 모두 장담할 수 없을 바에야 ‘누구는 절대 찍지 말라’고 하는 게 경쟁자를 물리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털어놨다. 1인2표제라는 투표 방식이 후보들로 하여금 비전 제시보다는 짝짓기에 열중하게끔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런 와중에도 후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대의원들은 변화를 원하고 있더라.” 변화의 조짐은 컷오프 예비경선과 시·도당 위원장 선거에서도 이미 감지됐다. 대의원과 당원들은 과연 어떤 변화를 선택할 것인가. ‘정체돼 있다, 인물이 없다, 희망이 없다’는 민주당에서 선거 혁명이 가능할 것인가. 일반 시민들에게도 신선한 감동과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인가. 그 결과는 정확히 일주일 뒤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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