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중국의 굴기, ‘G3’일본의 굴욕 … 1라운드는 중국 이겼지만 끝난 전쟁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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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일본을 상대로 ‘차이나 파워’를 보란 듯이 입증해 보였다. 그러나 동중국해를 둘러싼 영유권 갈등에서 승리한 것은 아니다. 중국은 일본이 구속한 중국인 선장 석방이라는 1차적·단기적 성과를 거뒀을 뿐이다. 중·일 양국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결해온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 문제는 이번 중·일 갈등을 계기로 오히려 더욱 고질화될 우려도 커졌다. 극한 대립이나 마찰이 앞으로 계속 불거질 수 있다는 얘기다. 앞으로 중국이 ‘힘의 외교’를 계속 구사하면 일본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중국, 파상적 외교 공세 먹혀=중국의 승리 요인은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으로 도약한 국력이 밑받침됐다는 분석이다. 중국의 올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로 올라섰다. 국운이 기우는 일본과 욱일승천하는 중국의 기세 싸움에서 일본이 패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실제 외교전쟁에서 중국이 승리한 배경에는 치밀한 전략이 작동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의 병법을 중국 외교 전략가들이 꿰고 적기에 효과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중국 어선 ‘민진위(<95A9>晋漁) 5179호’가 동중국해의 센카쿠열도에서 일본 순시선과 충돌한 지난 7일부터 중국은 조직적으로 기민하게 대응했다. 당일 중국은 쑹타오(宋濤) 외교부 부부장(차관)이 니와 우이치로(丹羽宇一郞) 주중 일본대사를 불러들여 항의한 것을 비롯해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부총리급)은 ‘외교적 관례’를 무시하고 일요일인 12일 새벽에 니와 대사를 불렀다. 중국이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각인시키려는 계산이었다. 다섯 차례 대사 초치와 한 차례 항의 전화에 일본은 13일 잔치슝(詹其雄·41) 선장을 제외한 14명의 선원을 석방했다.

중국은 반일(反日) 여론도 십분 활용했다. 집회와 시위가 금지된 베이징의 일본 대사관 앞에서 친정부 성향의 중국판 우익 인사들이 시위를 벌였다. 정부가 묵인했다는 의혹이 파다했다. 때마침 만주사변 79주년 기념일(18일)을 기화로 중국 전역에서 반일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일본 상품 불매”를 외쳐 ‘세계의 시장’으로 성장한 중국에서 영업하는 일본 기업에 압력을 가했다.

중국은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나서 최후통첩을 보냈다. 뉴욕을 방문 중인 원 총리는 21일(현지시간) “잔 선장을 무조건 즉시 석방하라”며 “일본이 고집을 부리면 더 강한 행동을 취하겠다”고 압박했다. 결국 일본이 24일 선장 석방 방침을 밝히자 중국의 한 네티즌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以眼還眼 以牙還牙)’ 작전이 먹혔다고 환호했다.

한편 중국의 강경책이 통일된 대외정책 부재에서 기인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워싱턴 포스트(WP)는 23일 "중국 군부와 주요 부처, 국영기업의 관리들이 제각각 나름의 대외정책을 추구하고 있다”면서 "이들이 중국 경제력 확대와 공산당 지도부의 리더십 약화를 계기로 각자의 이익에 집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한 관리는 "중국의 의도가 무엇인지, 누가 외교 정책을 주도하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며 "이번 사안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항복 아니라 양보”=일본 정부는 이번 석방 결정이 “중국의 외압에 굴복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번에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일보 후퇴했지만 이대로 계속 물러서진 않겠다는 각오다. 집권당인 민주당의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간사장은 “일본의 검찰청이 일본 정부나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본래의 판단을 굽히고 말았다는 식으로 여겨진다면 이는 국익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분명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카다 간사장은 또 중국 외교부가 이날 담화를 통해 “일본의 사법 절차는 불법”이라고 한 데 대해서도 “전혀 사실에 반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론했다.

일 정부 핵심 관계자는 “이번 석방 결정은 일본의 ‘항복’이 아니라 엄연한 ‘양보’”라고 말했다.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일본의 결정을 ‘유약함’이 아닌 ‘관대함’으로 평가할 것이며 오히려 중국의 오만함을 다시 한번 각인하게 됐을 것이란 자체 평가도 있다. 외무성의 한 관료는 “이번 사건은 일본 내 보수세력의 결집을 초래했다”며 “중국이 유사한 사건을 일으킬 경우 일본이 또다시 양보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베이징·도쿄=장세정·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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