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사회, MB정부의 판도라 상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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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호 02면

이 정부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지 싶다. 공정성이라는 판도라 말이다. 온 세상이 공정성 타령이다. 하긴 대통령이 8ㆍ15 경축사에서 공정사회를 주창했을 때부터 예상됐던 바다. 당시 대통령은 공평한 기회를 주고,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지며, 승자가 독식을 하지 않는 사회라고 말했다. 기회 균등의 사회가 공정사회라는 의미다. 과연 그럴까.

김영욱의 경제세상

48㎏ 이하의 라이트 플라이급 선수와 91㎏이 넘는 수퍼헤비급 선수가 권투 경기를 한다면 이 시합은 공정한가. 그렇지 않다고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라이트 플라이급 선수에게 수퍼 헤비급 선수와 시합할 기회를 주는 건 공정한가. 역시 불공정하다는 답변이 압도적일 것이다. 라이트 플라이급 선수가 KO당할 게 뻔해서다. 기회만 균등하다고 해서 공정사회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기회 균등 운운한다면? 책임을 회피하려는 변명이지 싶다.

그런데도 경기가 시작됐다고 하자. 이때 수퍼헤비급 선수가 힘껏 싸우는 것과 인정사정 봐주면서 살살 싸우는 것, 한쪽 손과 발을 묶은 채 싸우도록 하는 것 중 어느 게 공정일까. 이 정부가 따뜻한 마음을 강조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살살 싸우라는 것 같다. 그래서 질문이다. 이런 시합을 왜 하는가.

세상은 원래 불공정하다. 체중 91㎏이 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48kg이 채 안 되는 사람도 있다. 링에 설 때부터 조건이 엄청나게 다르다는 얘기다. 여기에 공정성 잣대를 들이대면 답은 자명하다. 초기 조건을 무너뜨리자, 그래서 출발선을 맞추자는 것이다. 자신이 흘린 땀으로 정당하게 승부를 가리자는 주장이다. 이는 곧바로 상속에 대한 거부감으로 표출된다. 일각에서 부유세 주장이 거세지고 있는 배경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책을 정부는 갖고 있는가.

일대일로 싸우면 질 수밖에 없으니 라이트 플라이급 선수들이 여러 명 힘을 합쳐 공동 대응하자는 주장도 공정성의 이름으로 제기될 것이다. 하긴 노조의 태동이 그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과 노동이 차지하는 몫만큼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게 또 있을까. 그래서 힘 약한 노동자들이 ‘공정성’을 내걸며 만든 게 노조다. 말이 협상이지 실제론 누구 배짱과 팔뚝심이 더 센지를 다투는 투쟁이다. 공정사회론이 거셀수록 노동쟁의는 심해질 것이다. 다른 분야로도 확산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부자와 서민, 기업형 유통업체와 영세상인들의 갈등 말이다. ‘만인의 투쟁’이 벌어질 경우 정부는 어떻게 할 요량인가.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공정사회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유사 이래 공정사회란 없었다고 해도, 가까이 가보겠다는 대통령의 다짐이야 바람직하다. 문제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치밀하고 구체적인 로드맵이 있느냐다. 혹여 뜨거워진 가슴을 주체하지 못해 말만 툭 던진 것은 아닐까. 정말 불행히도 그런 것만 같다. 그렇지 않다면 정부가 이토록 즉흥적으로 행동할 리 없어서다.

며칠 전 금융당국은 신용불량자들도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민간 금융회사 최고경영자의 연임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단다. 서민을 애틋하게 생각하고 신한금융 사태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고려하는 마음이야 탓할 수 없다. 설령 그렇더라도 정부가 할 일과 해선 안 될 일은 구분해야 한다. 은행 돈은 국민이 맡긴 돈이고, 신한에는 주주들이 있다는 걸 아는 정부라면 말이다.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 상생협력 다짐을 받아낸 것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걸 누가 탓하랴. 문제는 방식과 효과다. 아무리 다짐을 받아도 효과가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런다고 중소기업이 좋아지고,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건 지난 정부 시절 수없이 경험했다. 진심으로 중소기업을 도울 요량이라면 중소기업이 대기업 납품에만 목매달고 있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뜨거운 가슴만 있을 뿐, 냉철한 머리가 없는 공정성은 숱한 갈등과 혼란만 초래할 뿐이다. 이걸 아는 정부라면 지금이라도 공정 사회의 철학과 비전, 이를 실현하기 위한 로드맵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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