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서민 예산 33% 늘려 중산층까지 껴안는 ‘화끈한 복지’ … 문제는 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추석을 며칠 앞두고 정부가 ‘화끈한’ 친서민정책을 발표했다. 무상보육 확대, 전문계고 무상교육, 다문화 가족 지원을 내년 예산의 ‘서민희망 3대 핵심 과제’로 정하고 여기에 올해보다 33.4% 늘어난 3조7000억원을 책정했다. 310조원 안팎으로 예상되는 내년 예산의 1% 남짓을 ‘선택과 집중’ 원칙에 따라 세 가지 핵심과제에 쏟아붓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16일 오전 정부 과천청사 대회의실에서 ‘제71차 국민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 대통령, 조용 성수공고 교장, 돈나벨 카시퐁 다문화가정 주부, 오윤자 동대문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조문규 기자]

◆중산층까지 무상보육=소득 수준 상위 30%인 일부 고소득층을 제외한 서민·중산층의 보육을 정부가 책임진다. 원래 2012년 시행하는 것으로 정부의 로드맵에 나와 있던 것을 1년 앞당겼다. 우선 4인가구 기준으로 월소득이 450만원 이하(맞벌이가구는 600만원)인 서민·중산층은 유치원·어린이집의 보육료를 전액 면제받는다. 이는 올해 월소득 기준 258만원(맞벌이 가구 498만원)에서 대상을 크게 확대한 것으로 내년에는 보육가정의 70%가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또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을 때 지급하는 양육수당은 지원 대상을 만 0~1세에서 0~2세로 확대하고, 지원 금액을 월 10만원에서 최대 20만원으로 인상한다.

육아휴직 급여는 현재 월 50만원에서 최대 100만원(휴직 전 임금의 40%)까지 지원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맞벌이와 한부모 취업가정의 0세아(3~12개월)를 대상으로 집으로 찾아가는 ‘정기돌봄 서비스’ 지원 대상도 월소득 258만원에서 450만원으로 확대했다. 퇴근시간 이후에도 아이를 맡아주는 시간연장 보육교사를 현재 6000명에서 내년에는 1만 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문계고는 ‘희망 사다리’=공고·상고 등을 포함하는 전문계고는 전체 고교의 31%인 691개이며, 학생수는 48만 명이다. 정부는 이들 학교의 열악한 교육환경과 취업률 하락으로 가난의 ‘대물림’이 일어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에 교육비 지원혜택을 새로 받는 학생은 총 26만3000명, 1인당 연평균 120만원의 교육비(수업료·입학금 등)가 무상 제공된다. 이미 지원을 받는 마이스터고 재학생과 기초수급자 및 차상위 계층 등은 제외된다.

전문계고나 직업교육 전문가들은 정부 대책을 환영했다. 이상원 서울로봇고 교장은 “법적으로는 학비 지원 대상인 저소득층에 속하지 않아도 실제로는 급식비조차 못 낼 만큼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대부분이라 반가운 소식”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는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던 전문계고의 학생 유치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동렬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전문계고는 산업계 기반인력을 키워내는 역할이 크다”며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관점을 넘어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학비 지원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생 전체에 대한 일률적 지원이라는 점에서 야당이 주장했던 무상급식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기획재정부는 야당의 무상급식 주장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었다. 정부는 전문계고의 교육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전문계고엔 저소득·결손가족 비율과 중도 탈락률이 일반고보다 훨씬 높다. 기초수급학생 비율은 11.9%로 전체 고교의 두 배며, 결손가정 비율도 25.4%로 일반고(6.7%)를 웃돈다. 전문계고 무상교육은 요즘 최고의 화두인 ‘공정한 사회’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전문계고 학생의 34%가 기초수급자나 차상위계층 등의 사유로 학비 지원을 받고 있다. 지난해 전문계고 학생의 73.5%가 대학에 진학하는데 이들에게까지 학비를 지원해줘야 하는지도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함께하는 다문화 사회=다문화 가족이 안정적으로 정착해 향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다문화 가족은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보육료를 전액 지원한다. 결혼 이민자의 직업교육과 취업지원도 확대한다. 또한 다문화 가족 자녀의 언어 발달을 돕기 위한 ‘다문화 언어지도사’를 기존 100명에서 200명으로 늘린다. 다문화 가족의 아이들이 엄마(아빠)나라 언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이중언어 강사 100명을 배치하기로 했다. 다문화 가족을 한국 사회에 통합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차이’도 인정하면서 조화 있게 한국 사회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시도다.

아울러 결혼 이민자를 ‘다문화 강사’로 양성해 학교·문화시설에 파견하는 등 다문화 가정의 사회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지상파 TV와 지하철·버스 등 매체광고를 활용해 다문화 사회에 대한 국민 인식을 개선하는 작업도 계속해나갈 방침이다.

◆늘어나는 복지예산, 지속 가능한가=정부는 어려운 재정 여건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복지예산을 정부 총지출 증가율보다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서민희망 3대 핵심과제처럼 서민 체감도가 높은 과제를 골라 확실히 해결하되, 지속 가능한 건전 재정 유지를 통해 포퓰리즘적 지원과는 차별화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한국조세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보건·복지 지출 규모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2009년 국내총생산(GDP)의 9.5%에서 2050년 21.6%로 크게 늘어난다. 이는 현행 복지제도 유지를 전제로 추정한 것이다. ‘서민희망 예산’처럼 새로운 복지제도가 도입되거나 기존 제도가 확대 시행되면 복지 지출 규모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조세부담률을 올리거나 복지예산이나 다른 예산에서 허리띠를 확 조이는 세출 구조조정 없이는 이런 추세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박형수 조세연구원 재정분석센터장은 “남유럽 재정위기를 거울 삼아 복지 지출을 경제력에 상응한 적정 수준으로 억제하는 등 재정 건전화 노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글=서경호·박수련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