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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은…] 북한·미국 불신의 벽을 넘어서라

중앙일보

입력

북한 핵문제의 핵심은 평양과 워싱턴 간의 불신과 적대감이다. 이제 북핵 해법의 윤곽은 어느 정도 드러난 상태다. 그러나 워싱턴과 평양은 이 불신과 적대감 때문에 단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교착상태를 겪고 있다.

특히 미국과 북한 간에 놓여진 불신과 적대감은 북핵 문제를 제로섬 게임의 덫에 몰아넣었다. 워싱턴이 조금이라도 이득을 보면 그것은 자동적으로 평양에 손해가 되는 고약한 구조 말이다. 이런 구조와 상황이 지속되는 한 미국과 북한 모두 6자회담에서 바람직한 해결책을 마련하기 힘들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로섬 게임의 틀과 생각의 틀을 바꿔놓을 돌파구가 필요하다.

미국과 북한 모두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양측이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6자회담을 재개하는 것보다 좀 더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시작하는 것이 워싱턴과 평양 모두에 득이다. 북.미 화해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북한 인권법과 미군 유해 발굴이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미 의회는 지난해 북한 인권법을 통과시켰다. 북한은 이 법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것이 김정일 정권 붕괴를 겨냥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여기서 잠시 접어두자.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법이 애초에 중국을 떠도는 불쌍한 탈북자를 돕기 위해 제정됐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이 법이 부시 행정부에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을 주문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2년 1월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지목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북한 정권과 별도로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대단히 관대한 입장을 취해 왔다. 부시 행정부는 매년 수십만t의 식량을 북한 주민에게 지원해왔다. 또 부시 대통령 자신도 수 차례에 걸쳐 굶주리고 있는 북한 주민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한 바 있다. 북한의 열악한 의료 시스템으로 북한 주민이 고통받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규모 의료지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북 의료지원은 북한 인권법은 물론 북한 주민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입장과도 부합된다. 미국의 의료지원에는 의약품은 물론 의료장비와 병원 설비, 그리고 직접적인 의료 서비스도 포함돼 있어야 한다. 짐작건대 미국이 의료지원 용의를 밝힐 경우 북한은 이를 면전에서 반대하고 미국의 '적대시'정책을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북한이 미국의 직접적인 의료지원을 수용하기 어렵다면 유엔이나 기타 비정부기구(NGO)를 통한 지원도 무방하다. 문제는 의료지원 채널이 아니라 이 의료지원이 필요한 주민에게 전달되느냐 하는 것이다.

'손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라는 한국 속담이 있다. 북한도 나름대로 미국에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할 필요가 있다. 평양은 지난 몇년간 한국전에서 실종된 미군 유해를 발굴하는 데 협조해 왔다. 만일 북한이 미군 유해 발굴에 보다 적극적 자세를 보인다면 대다수 미국인은 이를 우호적인 의사표시로 받아들일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될 경우 부시 행정부도 북한의 협조에 대해 감사를 표할 것이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해야 될 일이 또 있다. 1970년대 납치된 일본인 문제를 한 점 의혹없이 해결하는 것이다.

미국과 북한은 이런 부담없는 일련의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기존의 제로섬 게임의 틀과 상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꿀 수 있다. 또 양측은 이런 조치를 통해 6자회담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북한은 이런 분위기를 타고 6자회담에서 한국.중국.러시아.일본과 머리를 맞대고 핵문제 해법을 모색하는 것은 물론 장차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반면 기존의 불신과 적대감이 지속되어 6자회담이 실패할 경우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은 한층 고조될 것이다.

제임스 굿바이 미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도널드 그로스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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