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써니리] ‘중국인보다 더 중국적인 외국인’

중앙일보

입력

모 중국신문의 경영전략회의에 외국인 코멘테이터로 참가하게 되었을 때다. 주최측의 사회자가 "우리 신문이 어떻게 하면 더 발전할 수 있는지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싶다"고 하자 모 국가의 외교관이 발언을 하였다. "중국과 xx은 역사상 가장 좋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는 첫마디부터 '외교적'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발언은 "小康사회 건설"로 나가 "화평 발전"으로 질주를 하고 있었다.
그의 동문선답식의 발언이 계속되자 점잖게 참던 중국 사회자가 "다른 사람들 의견도 듣고 싶다"고 그를 중지시켰다. 좌석에서 킥킥 웃음소리가 났다. 그는 너무 '외교적'이었던 것이다.
하버드대 중국 역사가 피터 볼 (Peter Bol)교수의 유교에 관한 특강도 최근에 있었다. 중국어로 유창하게 전 강의를 소화한 그의 언어 구사력에는 벌써 몇십년에 걸친 그의 '중국 내공'이 엿보였다.
문제는 Q&A시간이었다. 사실 명강의는 질의응답시간이 '건데기'인데, 그는 질문이 조금이라도 민감하다 싶으면 질문을 회피하거나 질문을 그냥 삼켜버리고 태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곤 했다. 마치 그 질문을 못들은 것처럼.
한 학생이 "지금 중국은 공자시대처럼 소수 엘리트가 사회를 지배한다. 동의하는가?" 묻자 그는 "외국인인 내가 대답하기에 적절치 않다"고 했다. 유교과 종교의 성격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는 얼버무렸고, 오늘날 중국 지식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란 질문은 아예 대답을 하지 않았으며, 중국이 앞으로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해야하는 가에는 "그건 중국사람이 결정할 일"이라고 대답했다.
모두가 흠잡을 데 없는 '모범답안'이었다.
그런데 '모범답안'을 들은 중국인들은 만족스럽지 못해했다. "저 교수, 말을 저렇게 조심스럽게 하는 걸 보니까 우리 중국을 아직도 문화혁명 시대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아. 중국사람보다 더 중국사람답다니까." 한 중국청중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옆자리의 일행에게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써니리 = boston.sunny@yahoo.com

※중앙일보 중국연구소가 보내드리는 뉴스레터 '차이나 인사이트'가 외부 필진을 보강했습니다. 중국과 관련된 칼럼을 차이나 인사이트에 싣고 싶으신 분들은 이메일(jci@joongang.co.kr)이나 중국포털 Go! China의 '백가쟁명 코너(클릭)를 통해 글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