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양은 타이밍의 예술, 무턱대고 세금 쓰지 말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83호 24면

미국 경제가 둔화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추가 경기부양을 고민하고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2000억 달러짜리 경기부양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효과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거졌다. 이 논쟁은 경제학계의 해묵은 논쟁거리다. 효과가 있으니 추가 경기부양을 해야 한다는 쪽과 효과가 없으니 세금을 깎아주거나 기준금리를 조절해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쪽이 편을 갈라 입씨름하고 있다.

글로벌 이코노믹 뷰

미국 금융위기 직후 각국이 추진한 재정정책은 기대한 만큼 효과를 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그런데도 경제학자들은 재정정책 효과 여부를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논쟁점은 세 가지다. 첫째는 ‘재정정책이 거시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는가에 대한 논쟁이다. 둘째는 ‘재정정책이 어떤 전달경로(Transmission Mechanism)를 타고 국내총생산(GDP)에 영향을 미칠까’다. 셋째는 ‘경제 상황에 따라 재정정책의 효과와 전달경로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다. 이 세 가지 논점을 간단하게 말하면 ‘경제가 침체일 때 재정정책의 승수효과는 얼마나 될까’다.

하버드대 로버트 바로 교수 등이 미국의 군사비 지출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해보니 미국의 재정정책 승수는 0.6~0.8 정도였다. 정부 돈 1달러를 쓰니 GDP가 0.6~0.8달러 늘어났다는 얘기다. 대공황 때는 효과가 더 높았다. UC버클리 경제·경영연구원인 미겔 알머니아 등이 따져보니 대공황 시기엔 미 재정정책 승수가 1보다 컸다. 정부 돈 1달러를 쓰면 GDP가 1달러 이상 늘었다는 것이다.

미 노스웨스턴대 로런스 크리스티아노 교수 팀은 최근 흥미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이들은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거의 0% 수준으로 유지하는 국면에서 재정정책 승수는 그렇지 않을 때보다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0% 수준에서 유지할 때는 바로 경기침체기다. 크리스티아노 팀은 침체기에 승수효과가 더 크다는 가설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영국 경제학자 메이너드 케인스의 주장과 비슷하다. 케인스는 재정정책이 경기 확장 국면보다 침체 시기에 더 큰 효과를 보인다고 말했다. 경제 상식에 비춰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침체기에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면 민간 투자를 위축시키는 부작용(구축효과)이 잘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일반적인 주장이다.

침체기에 승수효과가 클 수 있다는 가설은 경제정책 담당자들에겐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재정정책 효과를 두고 대립하는 경제학자들의 의견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도 도움이 될 듯하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경기변동에 따라 승수효과의 크기가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를 제대로 분석해보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계량경제학 분석도구 가운데 가장 평범한 선형회귀모델(Linear Regression Model) 등으로 경제 현실을 들여다본 뒤 미국 경기부양이 효과가 있느니 없느니 입씨름만 했다.

우리는 1950년 이후 60년 동안 정부 지출뿐 아니라 경기 상황을 감안해 실제 데이터를 분석했다. 경기부양을 위해 정부가 예산을 1% 늘린 것으로 가정했다. 20분기(5년)를 한 기간으로 삼고 정부 돈 1달러를 쓰면 GDP가 얼마나 늘거나 줄었는가를 따져봤다.

물론 우리가 감안하지 못한 변수도 꽤 있다. 재정정책이 경기 침체기에 효과가 컸지만 침체 원인에 따라 효과가 차이를 보일 수도 있다. 최근 침체는 금융위기에서 비롯됐다. 반면 1980년대 더블딥은 인위적인 현상이었다. 인플레이션을 사냥하기 위해 정부가 돈줄을 죄는 바람에 발생한 인위적인 침체였다. 우리는 정부의 재정적자가 큰지 작은지도 감안하지 않았다.

이런 한계에도 우리의 분석 결과는 적잖이 놀라웠다. 경기가 확장 국면인가 아니면 침체 국면인가에 따라 승수효과가 눈에 띄게 차이 났다. 미 경제가 더블딥(이중침체)에서 깨어나 확장하던 1985년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쓴 1달러는 GDP 증가에 그다지 기여하지 못했다. 미 경제가 금융위기 심연에서 허덕인 2009년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쓴 1달러 덕분에 GDP는 1.75달러 증가했다. 재정정책 승수가 1.75라는 예기다. 1950년 이후 60년간 분석결과를 종합하면 경기 확장 시기에 재정정책 승수는 0~0.5 사이였다. 정부가 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1달러를 써도 GDP는 0~0.5달러 정도만 늘어났다. 정부가 손해 보는 비즈니스를 한 셈이다. 반면 경기침체 시기 승수는 1~1.5 수준이었다. 정부가 1달러를 투입하면 GDP는 1~1.5달러 정도 늘어났다. 침체기에 재정정책이 효과만점이라는 의미다.

경기부양 타이밍도 중요했다. 경기가 침체 저점을 지나 회복하기 시작하면 재정정책 승수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회복 국면에 정부가 지출을 늘려봐야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다는 얘기다. 정부가 어느 부문에 돈을 쓰는가도 중요했다. 미국 정부의 경우 군사비 지출을 늘리면 승수효과가 가장 컸다. 1달러를 쓰면 GDP는 3.56달러 늘었다. 재정 지출과 각 부문의 혁신이 함께하면 승수효과는 평균 30% 정도 커졌다.

경제학자들은 지금 덮어놓고 경기부양이 효과가 있다 또는 없다고 입씨름할 일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경기부양 효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지금은 미 경제가 하강 중이다. 우리 분석대로라면 지금이 미 정부가 행동에 나설 때일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