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표자회 감감 … 평양에 무슨 일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북한이 ‘9월 상순’ 열겠다고 공고했던 노동당 대표자회가 10일에도 열리지 않았다. 통상 1~10일 사이를 말하는 상순(上旬)의 사전적 의미로 볼 때 당초 예정대로 열리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관영매체에서는 일단 당대표자회와 관련한 언급이 사라졌다.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6일 정론에서 ‘대표자들이 평양으로 집결하고 있다’고 전한 이후 관련 동정은 보도가 없다. 정상적이라면 대표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거나 대표자 등록을 마치고 김일성 동상에 참배했다는 등의 보도가 이어져야 한다. 당대표자회 개최를 공고했던 노동당 정치국의 ‘결정’이 빛을 바랜 모양새다.

행사가 주말에 열릴 가능성도 점쳐지지만 전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작다. 1945년 10월 노동당 창건 이후 전당대회 격인 당대회는 여섯 차례, 임시 전당대회라 볼 수 있는 당대표자회는 두 차례 열렸다. 그러나 개막일이 주말인 경우는 48년 2차 당대회뿐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언론의 침묵으로 볼 때 하루 이틀 내에 행사가 열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행사 개최 지연의 배경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일의 건강 문제를 꼽는다. 지난달 말 중국 방문 이후 급격히 건강이 나빠지자 당대표자회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정 위원은 “김 위원장은 2008년 8월 건강 이상 직후 열린 정권 수립 60주년 기념일(9·9절) 군사퍼레이드 당시 불참했으며, 이 때문에 행사도 오후 늦게 약식으로 치러졌다”고 지적했다. 김정일이 최근 공장·군부대 방문 없이 공연 관람만 하고 있다고 북한 선전매체가 보도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란 얘기다. 통상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공연을 통해 충전시간을 벌거나 아예 가짜 일정을 만들어 내보낸다는 게 고위 탈북자들의 말이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44년 만의 당대표자회 개최에 따라 준비에 차질이 빚어졌거나 논의해야 할 사안이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각 시·도 지역 대표자들이 그동안의 당 사업을 총화하는 단위모임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임연구위원은 “신의주 등지의 수해도 당대표자회를 열어 ‘대축전’ 운운하기 어려운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이승열 이화여대 교수는 “김정일이 후계자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할 장성택과 그 추종 엘리트 세력을 만족시킬 절충점을 찾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장성택에게 어떤 지위를 부여할지에 대한 결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관측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아예 ‘상순’의 의미를 폭넓게 해석한다. 그는 “북한에서 상순이 1~10일을 의미하는 건 맞지만, 1~15일을 말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더 기다려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