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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반부패협약 배경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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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2일로 예정된 '반부패투명사회협약'의 조인은 단지 비리 추방을 위한 대국민 약속일 뿐 아니라 국민 화합을 이룰 전기로도 평가된다. 그간 불법 정치자금이나 분식회계 등 과거 처리 문제를 놓고 맞서 왔던 정치권.재계.시민단체가 깨끗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동 노력한다는 합의안을 내놓게 됐기 때문이다.

◆ 화합의 상징=협약이 마련되게 된 데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제의는 시민단체가 했지만 이를 정부가 즉각 수용했고, 이후 재계도 동의하도록 분위기를 이끌고 갔다. 22일 조인식뿐 아니라 예비모임 격인 3일 '반부패 대국민보고대회'에도 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높은 관심을 반영한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기업의 과거분식 해소 문제 등을 놓고 증권 관련 집단소송에 유예기간을 주자는 정부.재계와 그럴 수 없다는 정치권.시민단체가 맞서는 형국이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소송에 대비해 변호사 영입에 나서는 등 경영에 전념하지 못하고 대책 마련에 힘을 쏟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노 대통령이 국민 화합을 위한 획기적 계기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노 대통령은 지난해 말 여당 지도부와 만남에서 "때가 되면 국민 통합을 위한 대화합 선언을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3일 고건 전 총리 등 사회지도급 인사들이 '투명사회협약 체결을 촉구하는 100인 선언'을 발표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즉각 환영을 나타냈고,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도 뜻을 같이했다. 그 뒤 김우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직접 나서 협약 준비 과정을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협약 조인이 국민적 화합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바탕으로 정치인이나 기업인의 과거 비리 처리에 대해서도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낼지는 미지수다. 정부.정치권과 재계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나 과거 분식 회계에 대해 사면 또는 관련자의 책임을 덜어주는 내용을 협약에 넣자고 주장하고 있다. 전경련 고위 관계자는 "기업들이 협약에 적극 참여하는 대신 적절한 사면과 면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재계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협약을 주도한 반부패국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우선 협약을 맺고 사면 등은 추후 전향적으로 검토하자는 입장이다.

◆ 사면 수준은 어디까지=기업의 회계 분식과 관련해서는 집단소송의 대상이 되는 것을 2~3년 유예해 주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해찬 총리는 최근 "1분기 중 법을 개정해서라도 기업들이 과거 분식 회계에서 면탈할 기회를 주겠다"고 한 바 있다.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노 대통령과의 사전 교감 없이는 이 같은 발언을 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정치인의 사면 복권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말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여당 의원들에게 "지금 이 문제를 드러내놓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처리 방법을) 여러 모로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적절한 수준의 사면 복권이 있을 것임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이런 조치가 이뤄질 경우 불법 정치자금과 관련된 기업인들도 사면 복권하거나 처벌 수위를 낮추는 것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사면.복권이 이뤄지더라도 정치인이나 기업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밝힌 경우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흑인 인권을 탄압한 백인들이라도 진실을 밝히면 사면한 '만델라식 협약'을 따르는 방안이다.

◆ 협약의 효력은=부패방지위원회 관계자는 "협약은 대국민 약속일 뿐 법적 구속력은 없다"며 "그러나 국민에게 앞으로 이런 것을 지키고 실천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를 어기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사회적 강제력'이 작용한다는 얘기다.

한편 협약은 시민단체가 주도하는'반부패투명사회촉진 국민협의회'를 두고 협약이 잘 지켜지는지 감시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또한 입법기관을 대표하는 국회의원과 정부기관의 장관 등이 협약에 직접 서명하는 만큼 협약과 관련한 법.제도 정비도 뒤따라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김시래.서경호.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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