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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낸 ‘형님’ 한창훈, 그도 천생 아비다 먹을 걸 물고와야 하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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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5월

어느 날 문득, 나는 혼자 내버려져 있었다. 며칠을 무작정 헤매다니다 서산의 유용주 시인 생각이 났다. 시인은 마침 집에 있었고,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둘은 진탕 낮술을 퍼마셨다. 전화가 걸려온 건 소주 예닐곱 병이 거덜난 다음이었다. 거문도의 한창훈 작가와 안동의 안상학 시인이 지리산 자락 박남준 시인의 집에 모인다는 소식이었다. 용주 형과 이들 셋은, 방방곡곡에 흩어져 살아도 의형제처럼 지낸다. 전화를 받은 용주 형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 길로 하동으로 달려 내려갔다. 우리는 남준 형의 집에서 꼬박 2박3일 술을 마셨다. 그 자리에서 한창훈은 형님이 됐다.

# 2009년 3월 19일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첫 회가 week&에 실렸다. 중앙일보가 지금의 크기로 판을 바꾸며 새 기획을 쏟아냈는데, week&의 야심작 중 하나가 형님 칼럼이었다. 형님 원고를 처음 읽은 건 서너 달 전이었다. 원고가 눈에 확 들어와 무조건 달라고 생떼를 부렸다. 첫 회 주인공은 고등어였다. 형님은 원고에서 아빠가 가족에게 회 떠먹이는 모습이 가장 보기 좋다며 다음과 같이 썼다. ‘모름지기 애비란 먹을 것을 물어오는 존재이다’. 이날 하루 나는 출판사 네 곳의 전화를 받았다.

# 2010년 2월

거문도에 봄 취재를 내려갔다. 형님이 모는 스쿠터 뒷자리에 앉아 섬을 돌다 생전 처음 인근해 쌍끌이 어선을 구경했다. 학꽁치 배였는데, 앞장선 배 선두에 어부 한 명이 위태로이 걸터앉아 바다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직도 우리의 어부는 눈으로 고기를 잡고 있었다. 첨단 레이더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나 우리 어부가 바다에서 밥을 버는 장면은 너무 단순해 눈이 시렸다. 충격받은 나를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형님이 한마디 얹었다.

“삼치는 어떻게 잡는 줄 아냐? 바다에 낚싯줄을 내리잖아. 수백m짜리. 그걸 내리고 낚싯줄 위에 손을 얹어. 삼치가 물면 줄이 흔들리겄지? 손으로 그걸 느끼고 죽어라 하고 줄을 끌어올려. 바로 올라오면 그래도 고맙게. 맨 처음 내렸던 낚시에 걸려 있으면 아주 진이 빠진다. 바다에서 먹고사는 게 다 이렇다. 앞으로 밥상에 생선 올라오면 큰절 올리고 먹어라.”

손민호 기자

# 2010년 7월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고 형님이 물었다. “손 기자야, 책이 팔릴까?” “제법 나갈 거 같은데요.” “이번 건 좀 나갔으면 쓰겄는데.” “목돈 필요하세요?” “딸내미가 고등학교 들어갔잖여.” 거문도의 자유로운 영혼 한창훈도, 그래 아비다. 부지런히 먹을 것을 물어와야 한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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