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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금융의 5가지 대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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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신상훈 사장을 신한은행이 배임·횡령으로 검찰에 고소한 것부터 그는 “믿기 어렵다”고 했다. ‘라응찬 회장-신상훈 사장’의 황금 콤비가 깨진 것은 “개탄스럽다”고 했다. 재일교포 이사들을 놓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모습에는 “정이 뚝 떨어진다”고 했다. ‘한국 금융의 수준이 고작 여긴가’에 생각이 미치자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했다. 그가 ‘부끄럽다’론 모자라 ‘참괴’란 말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는 신한이 이번에 다섯 가지 큰 죄를 저질렀다고 했다.

첫째는 공적자금 낭비죄다. 신한은 ‘국민 세금’을 먹고 컸다. 1997년 동화은행을 시작으로 2003년엔 2조7000억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간 조흥은행을 인수했다. 2007년엔 LG카드도 삼켰다. LG카드는 채권단 지원을 통해 5조원이 넘는 사실상의 공적자금을 받고 살아났다. 1982년 점포 세 개로 시작한 신한이 올해 자산 313조원, 직원 1만7587명의 거대 금융회사가 된 비결이다. 신한이 잘못되면 국민은 헛돈을 쓴 셈이 된다.

둘째는 정부 개입 방조죄. 진동수 금융감독위원장은 그제 “(신한 사태와 관련) 당국이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게 있는지 상의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집안 싸움에 정신이 팔려 관치(官治)의 칼이 들어올 틈새를 만들어 준 셈이다. 벌써 정권과 친한 인사들의 하마평이 흘러 나온다.

셋째는 주가 하락 조장죄. 외국인들은 최고경영자(CEO) 리스크에 민감하다. 사태 첫 날인 2일부터 신한금융 주식을 팔아 치웠다. 덕분에 주가는 1일 4만6200원에서 7일 4만3150원으로 3050원(6.6%) 떨어졌다. 시가총액도 21조9080억원에서 20조4617억원으로 줄었다. 며칠 새 1조원이 넘게 날아간 셈이다.

넷째는 후계 양성 포기죄. 한국 금융의 고질병 중 하나가 ‘후임 안 키우기’다. 거기엔 은행 수장들의 권좌욕도 한몫했다. 신한도 전과가 있다. 최영휘 전 신한금융 사장이다. 자타공인 2인자였지만 라 회장의 눈 밖에 나 몇 년 전 회사를 떠났다. 이게 두고두고 신한에 부담이 됐다. 라 회장은 이를 거울삼았다. 올 초 ‘라 회장-신상훈 사장-이백순 신한은행장’으로 이어지는 후계구도를 확정했다. 금융계 안팎에서 “역시 라응찬,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란 찬사까지 받았다. 2인자 한 명 안 키운 KB·우리·하나와 대비돼 더 돋보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이번 사태로 ‘고질병은 잠복할 뿐 치료되지 않는다’는 속설만 확인하고 말았다.

다섯째는 국민 기대 배신죄. 가장 뼈아픈 부분이다. 달리 ‘선진 금융 비전 박탈죄’로도 불린다. 신한은 한국 금융의 보루였다. 직원 수와 자산은 3위지만 이익은 압도적인 1위다. 더 덩치 큰 KB와 우리를 제치고 시가총액도 금융지주회사 중 1위다. 조흥은행과의 합병은 화합형 통합의 롤모델로 꼽힌다. 우리금융 민영화도 그래야 한다는 주장이 많을 정도다. ‘금융의 삼성전자’가 나온다면 신한일 것이란 얘기도 많았다. 오죽하면 경쟁사인 KB금융의 어윤대 회장이 “신한이 정말 잘한다”고 했을까. 그러나 모두 말짱 꽝이 됐다. 신한을, 라 회장의 리더십을 칭송했던 이들만 무색하게 됐다.

조목조목 죄목을 꼽던 A씨가 소망 하나를 털어놨다. “다음엔 꼭 ‘신한금융의 5가지 큰 공(大功)’을 꼽아보고 싶다”는 거였다. 그러려면 우선 결자해지, 라 회장-신 사장-이 행장이 서로 머리와 가슴을 싹 비워야 한다. 빠를수록 좋다. 그래서 같은 죄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신한이 살고 한국 금융이 살며 A씨의 소망도 이뤄질 수 있다.

이정재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