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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지구가 뿔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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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지구가 단단히 뿔났다. 북극 빙하가 녹아내리고(그린란드), 잠자던 화산이 폭발하고(아이슬란드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시나붕 화산), 대지진이 발생하고(아이티·뉴질랜드), 112년 만의 혹서(酷暑)가 몰아치고(일본)…. 한반도엔 ‘뎬무’ ‘곤파스’ ‘말로’ 3개의 태풍이 한 달 새 잇따라 강타했다. 올 기상이변은 북극과 남극, 북반구와 남반구, 동양과 서양을 가리지 않고 수백 년 된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구의 대재앙을 그린 공상과학 영화를 현실에서 생생하게 보는 느낌이다.

지금 지구는 도처에서 곪은 상처를 터뜨리며 신음하고 있다. 무차별적 온실가스 배출로 지구온난화를 조장한 인간이 주범이라는 설(說)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열(熱)받은 지구를 다시 식혀 그 고통을 덜어줄 방법은 없을까.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2006년 제작한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당장 줄이지 않으면 지구는 회생 불가능하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방귀로 온실가스를 내뿜는 소를 탓하고, 자동차를 덜 타고, 화학섬유를 안 입는다고 온난화를 막기엔 버거운 감이 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숭고한 다짐만으로 해결될 단계는 넘어섰다.

과학자들은 기후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방법, 바로 지구공학(Geoengineering)에 주목한다. 1991년 필리핀의 피나투보 화산 폭발 때 단초를 찾았다. 화산가스 중 포함된 이산화황(SO 2) 입자가 대기의 성층권에 분출돼 태양광을 반사한 덕분에 한동안 지구가 냉각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를 실용화하기 위해 세계적인 ‘특허 괴물’로 불리는 미국의 인텔렉추얼 벤처스(IV)는 ‘하늘에 닿는 호스(Garden hose to the sky)’라는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라고 한다. 지상에서 성층권까지 길이 29㎞에 헬륨풍선으로 고정시킨 호수를 놓은 뒤 노즐을 통해 액화 이산화황을 성층권에 뿌리자는 발상이다. 대략 3년이면 완공이 가능하고 초기 설치비용 1억5000만 달러에 연간 운영비 1억 달러 정도면 된다고 IV는 추산한다. 물론 또 다른 환경오염 가능성과 환경론자의 반대에 부딪혀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도전(挑戰)과 응전(應戰)’이라는 인류 역사를 낙관한다면 지구공학은 지구 과열을 식혀줄 돌파구가 될지 모른다. ‘녹색 성장’을 외치는 대한민국도 이런 거대한 공상과학에 도전하길 기대한다.

고대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