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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정당’의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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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인터뷰를 하기 전 나는 정면으로 물었다. “선생이 출마하면 야권 표가 쪼개진다. 군부정권이 출마를 사주한 것 아니냐.” 백씨는 아니라고 부인했다. 당시 대선은 양김(兩金, 김영삼·김대중)뿐 아니라 재야세력까지 사분오열(四分五裂)시켰다. 결국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됐다.

그는 막판에 사퇴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진실을 알지 못한다. 진보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욕만은 그의 오래된 소망이었다. 그 맥은 진보신당으로 이어졌다. 민노당 계열은 오히려 김대중(DJ) 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 쪽이 많았다. 당선 가능성이 있는 후보 가운데 가장 우호적인 사람을 지원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노선이다.

어느 쪽이 올바른지를 여기서 가릴 생각은 없다. 전략의 차이일 뿐이다. 백씨의 경우 당장 집권은 못하더라도 자신들의 이념을 공개적으로 선전·확산하는 기회를 얻고자 했다. 정당은 이념공동체다. 이념을 확산하고 지지기반을 넓히는 데 필요하다면 집권을 못하는 ‘불임(不妊)정당’이라도 만들 수 있다.

비슷한 시기 긴급조치세대는 ‘한겨레민주당’을 만들었다. 당시 참여한 사람 중에 고인(故人)이 된 제정구 전 의원, 이강철 전 청와대 정무특보, 유인태 전 의원, 조순형·원혜영·김부겸·장광근 의원 등은 뒷날 정치인으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88년 총선에서는 참패했다. 운 좋게 평민당과 같은 기호를 받아 전남 신안에서 당선된 한 명을 제외하면 전원이 떨어졌다. 이들은 현실정치의 벽을 절감했다며 대부분 양김 진영에 합류했다.

선거가 다가오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정당들이 생긴다. 공천용 정당이다. 이런 정당은 대개 선거가 끝나면 소리소문 없이 자취를 감춘다. 하지만 한겨레민주당은 적어도 선거용 정당은 아니었다. 기존 야당과는 분명히 지향하는 바가 달랐다. 그런데 왜 사라질 수밖에 없었을까.

유력한 대통령 후보를 내지 못한 ‘불임정당’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관심은 대권에 있고, 자신의 표가 그 승부에서 사표(死票)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강력한 이념정당이 살아남는 것도 사실 지지층이 장기적인 집권(변혁)전략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한 가지는 지역주의에 기대는 것이다. 바로 3김 정치의 핵심이었다.

이도 저도 아니면 대권게임을 없애버리는 수밖에 없다. 내각제나 이원집정제에서는 대권후보를 중심으로 한 표 쏠림 현상이 줄어든다. 합종연횡(合從連橫)도 가능하다. 중·대 선거구제로 가면 표는 더 흩어진다. 김종필씨(JP)는 이를 위해 이념을 무시하고 DJP연합까지 만들었다.

6·2 지방선거에서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가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 선거 직후 그는 “전율(戰慄)을 느낀다”면서 사퇴했다. 그는 “이대로 가면 다음 대선에서 진보세력에 다시 정권이 넘어갈 수 있다”면서 “(보수세력은) 이해타산을 따질 때가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충남도지사 선거에서 자유선진당과 한나라당의 득표를 합하면 50만1988표로 민주당 안희정 후보의 득표수 36만7288표보다 훨씬 많았다. 이인제 효과를 상기한 것이다.

그런데 그는 열흘 뒤 복귀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그는 한나라당과 이념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한나라당 총재로, 대통령 후보로 정치 경력을 쌓았다. 한나라당 후보로 두 번이나 실패한 그가 군소정당 후보로 집권할 가능성은 더 낮다. 지역주의는 그가 그렇게 비난했던 3김 정치의 유물(遺物)이 아닌가.

그에게 희망이 생겼다면 개헌론이 다시 솔솔 피어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주로 불임(不妊)세력들이다. 유력 후보들인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대표, 민주당의 손학규·정동영 전 대표 등은 부정적이다. 반박(反朴) 실용주의 세력과 지역적 한계에 갇힌 야당의 대연합으로 이들을 포위할 수 있다고 꿈꾸는 사람도 생겼다. 내각제(이원집정제)와 중·대선거구제를 더하면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3당 합당 같은 지각변동이다. 노선 문제를 보면 그 이상이다. 문제는 국민 여론이다. 성공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이마저 실패한다면 군소 정당은 대선 태풍에 날려갈 수 있다. 어쩌면 그 전에 이 대표는 보수 원로로서 결단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두 번이나 이 대표에게 표를 몰아준 보수층은 그가 느낀 그 전율을 아직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진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