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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부심? 세종시에 가고 싶어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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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자부심일까,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일까.

이르면 2012년 말부터 세종시로 ‘이사’를 떠나야 하는 공무원들 얘기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2일 정부 과천청사 대강당에서 세종시 첫마을 아파트 분양설명회를 열었다. “명품, 세종시에 사는 것이 자부심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다. 첫마을 아파트 1단계에는 119㎡형 414가구 등 모두 1582가구가 공급된다. 10월 분양 후 내년 말에 입주가 시작된다.

설명회는 성황이었다. 500명 규모의 대강당이 꽉 들어찼고, 30여 명은 서서 들었다. “대강당에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이렇게 많이 모인 것은 처음”(환경부 공무원)이었다. 분위기는 이랬다.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

“우리가 가고 싶어서 가나. 도로 가운데 시속 10㎞짜리 자전거 고속도로 따위가 왜 필요하나. 결국 부채 덩어리인 LH가 공무원 상대로 팔아먹은 뒤 시범사업 잘했다고 소문 내서 장사하려는 거 아니냐. 초등학교도 이런 식으로 일 처리하지 않는다.”

“연기군청 앞, 국내 유수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는 650만원에도 분양이 안 돼 500만원으로 낮췄다. 공무원이 무슨 봉이냐.”

“좋은 점만 얘기하는데, 혐오시설은 없나? 어디에 들어가나.”

질의응답이라기보단 ‘항의’에 가까웠다. 급기야 “비아냥거리지 마시고, 설명을 좀 들어주셨으면 좋겠다”(행복청 관계자)는 얘기가 나왔다.

공무원들의 분위기는 어떨까. “없는 일로 치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지식경제부의 한 여성 사무관 얘기다. 그는 “소통, 소통 하지만, 정부 부처만 사실상 격리시켜 놓으면 어떻게 소통이 되겠느냐”고 했다. 에너지관리공단 등 관련 공공기관은 울산으로 옮겨 간다. “거리가 꽤 된다.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 얼굴을 맞대야 하는데, 미안해서 오라고 하기도 힘들 것”이라는 거다.

생활과 관련된 얘기도 있다. “윗집에는 과장님이, 옆집에는 국장님이 살게 될 텐데 과연 퇴근이랄 수 있을까”라는 불만부터 “문화생활이 없을 텐데 마친 후 술 마시는 것 외에 뭘 해야 할지”라는 얘기도 적잖이 들린다. 특히 ‘미혼 여성 공무원’들의 볼멘소리가 많다. “결혼이라는 게 함께 살며 나누는 걸 텐데, 세종시나 대전에서 남편감을 구하지 않는 이상 누가 결혼하려 할지 모르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실파들도 일부 있다. 세종시로 옮겨 갈 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은 “계획대로 집값이 싸고, 교육시설만 갖춰진다면 복작거리는 수도권을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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