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학 구조조정, 퇴출 경로 마련이 먼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교육의 질이 부실해 학자금 대출 한도를 제한받는 50개 대학의 명단을 공개하려는 교육과학기술부의 방침에 대학이 집단 반발하고 있다. 전문대 총장들의 모임인 전문대학교육협의회는 어제 명단 공개 재검토를 교과부에 건의했다. 한국대학법인협의회도 명단 공개 반대 입장을 밝혔다. 4년제 대학 총장 모임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도 조만간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교과부의 이번 방침은 부실 대학을 간접적으로 공개해 구조조정을 유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학자금 대출 혜택이 적은 대학은 신입생 지원이 줄어 교육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자구(自救)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 한 고사(枯死)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자금 대출 제한을 대학 구조조정과 연계하는 것은 학자금 제도 취지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방법상 문제점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취업률·재학생 충원율·학사관리 등 대출 제한을 판정하는 6개의 획일적인 잣대로 대학 운영 전반의 부실 여부를 가린 꼴이어서 대학들이 수긍하기 어렵다. 재학생들의 피해도 우려된다. 자구 노력 기회도 주지 않고 명단부터 공개하면 부실 대학 낙인이 찍혀 취업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 구조조정은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지원자보다 대학 모집 정원이 많은 ‘정원 역전(逆轉)’이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대학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학생 수 부족으로 경영 곤란을 겪는 한계 대학의 퇴출(退出)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대학이 수용할 수 없는 강제 퇴출 방식으로는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대학들이 스스로 문을 닫을 수 있도록 자발적 퇴출 경로를 마련하는 게 급선무(急先務)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해산 대학의 잔여재산을 국고로 귀속시키도록 하고 있다. 이래서는 스스로 문 닫는 대학이 나올 리 만무(萬無)하다. 교과부가 잔여재산의 공익·사회복지법인 출연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이 정도로는 미흡하다. 사립학교법을 고쳐 대학 설립자에게 잔여재산의 일부를 돌려주는 특례를 시행하는 게 근본 해법이다. 부실 대학 명단 공개에 앞서 자발적 퇴출을 지원하는 제도부터 정비해야 대학 구조조정을 활성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