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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봤습니다] 송보명기자의 하버드·MIT 탐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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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미국 보스턴 송보명 기자 sweetycarol@joongang.co.kr

#1 “This is the statue of John Harvard. He is not a founder, he is a donor(이것이 존 하버드의 동상입니다. 그는 학교 설립자가 아니라 기부자입니다).” 하버드 교정에 들어서자 관광객에게 목이 터져라 설명하는 금발의 여학생이 보였다. 목소리에는 학교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가득했다. “방학 동안 봉사활동으로 관광객들에게 학교 투어를 해주는 재학생이에요.” 유학생 최승원(29·하버드 메디컬 스쿨 박사과정 4)씨가 설명했다.

MIT에서 만난 유학생 홍하 씨. 그는 “‘매일 아침 오늘은 어떤 해답을 찾게 될까’하는 기대감으로 학교에 온다”고 말했다. [송보명 기자]

캠퍼스는 비교적 한산했다. 기숙사가 잠시 문을 닫는 방학에는 대다수 학생이 교외에서 봉사활동과 취미생활을 하며 시간을 보내서다. 최씨는 “제3세계에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할렘에서 재능 기부를 하는 학생들이 많을 것”이라며 “개성과 잠재성을 중시하는 하버드의 교육이념 하에서는 다양한 경험이 성적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입학처 건물 게시판에서 발견한 입시요강에는 “SAT에서 1600점(만점)을 받은 학생보다 다양한 경험을 쌓은 1200점대 학생을 선호한다”고 적혀 있었다.

하버드의 상징 와이드너 도서관은 1500만 권이 넘는 장서로 가득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 도서관 자료를 다 합한 것보다 많다고 한다. 최씨는 “학기 중에는 30개가 넘는 도서관이 공부하는 학생들로 북적인다”고 말했다. 하버드의 졸업 학점은 32학점(한 과목이 1학점)인데 ‘딱 죽을 만큼’ 공부해야 한 학기에 5과목을 겨우 이수할 수 있을 정도다. “진도가 빠르고 과제량도 어마어마하게 많기 때문에 24시간 도서관에 살면서 18시간 공부하고 2~3시간씩 새우잠을 자는 것이 일상이죠.”

이런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하버드에는 재미있는 전통이 있다. 기말고사 기간 시작 전날 밤 학생들이 상의를 벗고 하버드 교정을 뛰어다닌다는 것. 최씨는 “시험 스트레스를 덜기 위한 일종의 장난”이라며 “하버드 학생들도 장난치기 좋아하고 시험 부담으로 힘들어하는 여느 대학생들과 다르지 않다”며 웃었다.

#2 MIT는 공과대학으로 유명하지만 경제학과와 언어학과도 뛰어난 수준을 자랑한다. 하버드대가 여러 개의 캠퍼스로 이루어진 것과 달리 MIT는 복도로 모든 강의실이 연결돼 있다. “전 세계 대학 중 가장 긴 복도를 가지고 있는 곳이 여기죠. 햇볕 한 번 쬐지 않아도 하루 동안 모든 수업을 들을 수 있어요.” 유학생 홍하(26·하버드-MIT 의과학 박사과정 2)씨의 말을 들으니 복도에서 마주치는 학생들의 얼굴이 유난히 창백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복도에는 고가의 장비가 가득한 연구실과 화학·생물 실험실이 늘어서 있었다. 인공지능발전연구소, 생명공학센터, 암연구소 등 40여 개의 특수연구소와 실험실 곳곳에서 방학을 반납한 대학원생들과 교수들의 연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홍씨는 “재학생의 75% 이상이 각종 최첨단 기술 개발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며 “최고 수준의 연구시설 덕분에 MIT의 공학·자연과학 프로그램은 세계 랭킹 5위 안에 들고 컴퓨터공학과 의학공학·기계공학은 1위를 놓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학원에서 뇌과학을 전공하고 있는 홍씨 역시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가 넘는 시간까지 연구에 골몰한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붙들고 몇 시간씩 앉아 있는가 하면 동료들과 팀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한다. 그는 “답답할 때도 있고 주눅이 들 때도 있지만 단 한번도 유학생활을 후회한 적은 없다”고 했다. ‘오늘은 어제 몰랐던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겠지’ 하는 희망으로 매일 아침 학교에 와요. 이곳은 잠재력과 리더십, 지적 성취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에게는 천국과 같은 곳이에요.”

MIT 학생들도 장난을 좋아한다. 학교의 상징인 돔(dome)형 건물 위에 경찰차와 소방차를 올려놓는가 하면 개강 후 수많은 학생들로 가득 차는 복도에 신호등을 달아놓기도 한다. 홍씨는 “무해하고 기발한 장난을 일컫는 ‘해킹’은 MIT 학생들의 창의력과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상징”이라며 “교수들도 이런 장난 정도는 눈감아 준다”고 말했다.

폭넓게 공부하며 진로 고민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뭘까? 두 학생은 “향후 진로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에서도 명문대 졸업장은 성공과 출세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들은 간판보다 목표를 찾기 위해 진학을 결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홍씨는 “최소 두 가지 이상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폭넓게 공부하고 있다”며 “유명 교수의 연구에 참여하거나 기업에서 인턴을 하는 등 다양한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하버드와 MIT에서는 노벨상 수상자, 유명한 학자들의 강의를 듣는 것이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고등학교 수석 졸업생도 숱하다. 이런 엘리트 학생들과 경쟁하는 것은 큰 부담이다. 이 때문에 언어(영어) 실력이 부족하고 토론식 수업이 생소한 한국 학생들의 아이비리그 자퇴율은 44%에 달한다. 최씨는 “세계적인 석학에게 강의를 듣고 집에까지 초대를 받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임한다면 충분히 쫓아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비싼 학비가 고민인 학생들에게는 희소식이 있다. 대개 지원자의 재정능력을 따져보고 합격여부를 결정하는데 비해 이들 대학은 학생 선발 시 학비 부담 능력을 고려하지 않는 ‘니드 블라인드 어드미션(Need Blind Admission)’ 정책을 얼마 전부터 외국 학생들에게도 적용한 것이다. 학생들은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학비를 차등 부담한다. 소득이 10만 달러 이하일 경우에는 학비 전액이 면제된다.

아이비리그(IV Y League)= 하버드(Harvard), 예일(Yale), 브라운(Brown), 컬럼비아(Columbia), 코넬(Cornell), 다트머스(Dartmouth),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프린스턴(Princeton) 등 미국 동부의 8개 명문 사립대학을 일컫는 말. 이들 대학에 담쟁이덩굴(Ivy)로 덮인 건물이 많고 대학끼리 미식축구 대항전(League)을 한 데서 유래했다. 최근에는 아이비리그 대학에 MIT(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스탠퍼드(Standford)를 합해 아이비플러스리그(IVY Plus League)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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