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 간다” 트위터에 미묘한 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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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29일 사퇴를 발표했다.

8·8 개각에서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향후 대선 밑그림까지 반영하는 ‘발탁 인사’의 주인공으로 개각의 하이라이트였다. 김 후보자는 올 1월 청와대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과 독대를 요청한 뒤 “큰 공부를 하겠다”며 포부를 밝혔고, 이 대통령은 “앞으로 크게 쓸 인물”이라고 화답했다. 그 뒤 김 후보자가 도지사 불출마를 전격 선언한 데 이어 6개월여 만에 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자 정치권은 김 후보자를 대통령이 육성하는 차기 주자군의 한 명으로 간주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진영이 긴장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김 후보자는 총리 후보에 지명된 지 불과 21일 만에 자진 사퇴라는 불명예를 남겼다. 김 후보자는 지명된 직후 “소장수의 아들이 대한민국이 기회의 땅임을 보여주겠다”며 이 대통령이 추진하던 ‘친서민 정책’ 코드에 맞춰 서민층을 파고들었다. 서민 식당을 찾고, 잠재 차기 주자인 김문수 경기지사와도 공방을 피하지 않는 등 파격 행보를 이어갔다.

그러나 무난하리라던 청문회 첫날(24일) 김 후보자가 ‘부인의 관용차 사용’ ‘도청 직원의 가사도우미 이용’ 등에 대해 당초 해명과 달리 공식 사과하고, 선거자금 10억원 불법 대출까지 불거지며 여당 내에서도 “착오가 너무 많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급기야 25일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만난 시점을 “2007년 후반기”에서 “2006년 10월 함께 골프를 쳤다”로 말을 바꾸면서 ‘거짓말 논란’이 본격화됐다.

서민이라던 김 후보자의 말 바꾸기에 여론은 급속히 악화됐다. 청와대는 “교체 불가” 입장을 고수했지만 27일엔 한나라당 의총에서도 ‘김태호 불가론’이 튀어나왔다. 여당은 청와대에 “인준 투표를 강행하면 여당 내 반대표로 부결될 수 있다”는 의견까지 전달했다. 정부 고위 인사는 “(김 후보자에 대한) 여론이 관심에서 반감으로 바뀌었다”며 “특히 서민층과 40대의 정서가 돌아서며 청와대에 대한 반발로까지 이어지는 기류가 보였다”고 말했다.

결국 27일 오후 청와대 기류는 ‘고수’에서 ‘우려’로 바뀌었고, 총리실에서도 “(임명동의안 투표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날 밤 김 후보자는 임태희 대통령실장을 만나 “대통령이 제시한 공정한 사회에 걸림돌이 될까 우려된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김 후보자는 29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에게 누가 되지 않겠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사퇴한 날 트위터에 글 올린 김태호=김 후보자는 사퇴 발표 후 트위터에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간다”는 문구를 올렸다. 마오쩌둥 어록엔 ‘천요하우, 낭요가인, 유타거(天要下雨, 娘要嫁人, 由他去)’가 있다. “하늘에서 비를 내리면 막을 수 없고, 홀어머니가 시집을 가려 해도 막을 수 없다”란 뜻으로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의미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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