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감사하는 마음, 죽음에 맞서는 의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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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호 02면

대한민국의 지구 반대편 국가 칠레에 지금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광산 붕괴 사고로 땅속에 갇힌 광부 33명이 25일째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엊그제 이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는 생생한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이 기적은 칠레를 넘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현재진행형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 구조의 마침표가 찍힐 때까지 지구촌 모든 사람들은 기적의 진행을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됐다.

이번 사태가 국경을 넘어 감동을 주는 이유는 매몰 광부들의 삶에 대한 의지가 경이롭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고가 난 5일 뒤 지하 700m 지점의 비상 피신처에 모여 20여 일 동안 죽음의 공포와 맞서 싸웠다. 현재 생활하고 있는 공간은 넓이가 50㎡(약 15평)에 불과하다. 그 좁은 공간에 33명의 장정이 생활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들이 찍은 비디오에 비친 온도계는 29.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 광부는 샤워를 하고 싶다고 했다. 속옷이 필요하다는 사람, 고기가 먹고 싶다는 광부도 있었다. 의식주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말 그대로 ‘지옥 생활’이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 그들이 보여준 생존법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선 그들의 삶은 감사로 충만했다. 생명선을 통해 내려온 카메라 앞에서 가족과 대통령, 그리고 자기들을 구하려 애쓰는 모든 이들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칠레 국가를 함께 불렀다. 이 또한 구조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국가에 대한 감사의 표시다. 그들은 신에게도 감사했다. 아울러 신의 이름으로 자기들을 돕는 사람들을 축복하기도 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삶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는 죽음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시였다. 카드와 영화 CD를 보내달라고 한 장면은 눈물겹다. 무료함보다는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서일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죽음에 맞서려는 의지가 20여 일간 지옥에서 건강하게 살아남게 한 비결이다.

앞으로 더 큰 도전이 남아 있다. 일부 광원들이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칠레 정부는 임상 심리 의사와 미 항공우주국(NASA)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이들의 정신적 고통을 덜어줄 계획이다.

칠레 정부는 25일 논란 끝에 광부들에게 구조가 넉 달 정도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통보했다. 광부들은 또 한 번 충격을 이겨내야 한다. 예정대로라면 그때는 크리스마스 즈음이다. 33명의 칠레 광부들이 그들의 기적과 함께 해온 지구촌 사람들에게 값진 성탄 선물을 안겨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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