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카터 방북 후 시나리오별 기민한 대응전략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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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반도 주변 정세가 급변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평양을 방문해 6자회담 재개문제를 논의한 데 이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도 평양을 방문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북핵문제 논의가 장기적으로 중단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갑작스럽게 전환하는 분위기다. 상황은 아직 유동적이지만 천안함 공격에 대해 북한이 사과는커녕 발뺌만 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 같은 일들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카터 전 미 대통령의 방북은 북한의 요청에 미국이 응해 이뤄졌다. 북한의 의도는 천안함 사건 이후 강화되고 있는 대북 압박국면을 벗어나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평양에 감금된 미국 시민 말리 곰즈를 데려오기 위한 목적일 뿐이라고 과도한 의미 부여를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의 관심을 끌 만한 새로운 제안을 던진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럴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94년 1차 핵협상이 결렬돼 긴장이 고조되자 평양을 방문, 김일성 주석을 만나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내고 북·미 제네바 합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반전(反轉)시킨 적이 있다.

여기서 북한이 유념해야 할 일이 있다. 당시 남북 정상회담은 사상 첫 만남이라는 점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동의할 명분이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다르다. 천안함 사건은 분단(分斷) 이후 최대의 대남 군사공격이었다. 이에 대한 아무런 해명도 듣지 못한 우리 정부가 6자회담이나 남북 정상회담에 선뜻 나서기 어렵게 돼 있다. 대북 압박국면이 풀리길 원한다면 북한은 분명한 사과부터 해야 한다.

정부도 북한이 제시할 각종 제안들을 모두 상정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북한 사과 없이 6자회담 재개 불가’ 입장을 고수할 경우 자칫 소외될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미국·일본과의 긴밀한 공조체제를 다져 우리 입장이 관철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동시에 6자회담 재개가 불가피한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각 시나리오별로 정부의 기민하면서도 유연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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