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친서민’ 담론의 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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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특히 서민은 부자와 대립각을 이루는 존재로 읽혀져 왔다. 그 결과 속물형 ‘졸부(猝富)’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떳떳한 ‘청부(淸富)’와도 대립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통합을 지향하는 ‘공동체 의식’과 거리가 먼 이유다. 우리가 분배적 정의와 복지 문제를 소홀히 하고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머리털이 깎인 삼손’을 연상시킬 뿐이다. 삼손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려면 머리카락이 필요하듯이 공동체도 진가를 발휘하려면 연대의식과 공동선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

그동안 정부가 야심 차게 쏟아낸 친서민 담론들을 보면, 물질적 복지에 치중한 나머지 공동체의 영혼처럼 다루어져야 할 지성과 품위, 덕목이 빠져 있다. 그러다 보니 공직자의 청렴성이나 도덕성과 같이 중요한 가치들조차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청문회에서 공직 후보자들의 도덕성이 문제가 되어 급기야 ‘죄송 청문회’가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서민 만능주의’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구성원들 사이에서 공유해야 할 예의와 배려, 지혜는 물론 국가공동체에 대한 헌신이나 열정조차 경시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왜 자랑스러운지를 말해 주지도 않는다. 결국 친서민 담론은 공동체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정신적 요소를 배제한 물질적 범주 일색인 셈이다.

공동체에서 살아갈 때는 경제적 인간, 즉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평등한 존재로 서로 우정을 나누며 유대의식을 갖는 ‘시민’, 즉 ‘호모 키비쿠스(homo civicus)’로서의 삶은 더없이 소중하다. 이 시민의 범주에는 희생과 봉사, 헌신과 배려가 들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행인을 괴롭히는 소매치기를 쫓아가 그를 잡은 사람에게 시민의식을 기려 ‘용감한 시민상’을 주기도 하고, 세금을 잘 내고 법과 질서를 지키며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에게 ‘모범 시민상’을 주기도 한다. 또 모르는 이웃을 위해 헌혈을 하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고아를 입양하는 ‘아름다운 시민’이 되기를 권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연대의식과 시민적 우정을 공유한 시민정신이 넘쳐흐를 때 공동체는 ‘이익사회’의 분열성을 넘어 ‘가치사회’의 통합성을 지향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물론 정부가 양극화와 가난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영혼의 어젠다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자와 대립각을 세우는 ‘서민의식’이 아니라 유대감이 기초가 되는 ‘시민의식’을 통해 공동체의 가치를 일깨워 주어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네 8월에는 ‘서민’이 아닌 ‘시민’의 입장에서 기억해야 할 날이 많다.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국치일’과 그로부터 해방된 ‘광복절’ 및 대한민국을 세운 ‘건국일’이 함께 들어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이런 8월이라면 국가공동체가 왜 중요하고 또 그를 위한 헌신과 열정이 왜 소중한지를 ‘서민’이 아닌 ‘시민’의 입장에서 반추할 수 있어야 한다.

친서민 담론은 “국가가 내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하는 점만을 묻고 있을 뿐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묻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래서는 공동체의 미래가 없다.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서는 물질적 빈곤을 없애고 분배적 정의를 실현하는 문제를 넘어 시민들 사이에 유대와 헌신의 정신을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일이 요구된다. 이제 정부도 ‘서민에 관한 이야기’만 하지 말고, ‘시민에 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