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즈 석방만 논의” 미 정부 외치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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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관리 없이 평양에 들어가 하루 만에 사람만 데리고 나온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1994년 6월 북한 핵위기 때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만나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에 8개월째 억류 중인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의 석방을 위해 24일 1박 일정으로 평양을 찾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요건이다.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카터의 방북 목적은 순수하게 곰즈 석방만을 위한 것인 만큼 업무가 끝나면 서울을 들르지 않고 바로 귀국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우리 정부 당국자도 “미국은 카터의 방북이 곰즈 석방 외에 다른 목적이 없음을 우리 측에 분명히 밝혔다”고 확인했다. 미국은 지난 1월 곰즈가 북한 당국에 억류된 이래 ‘조용한 외교’를 통해 그의 석방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곰즈의 건강 상태가 악화됐을 가능성이 커지자 미 국무부는 지난 9~11일 영사 담당 관리와 의료진을 북한에 파견해 그를 직접 진단했다. 그 결과 국무부는 곰즈가 조속히 석방되지 않으면 사망 등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고위 인사 방북’ 카드를 결정했다고 외교 소식통은 전했다. 곰즈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지냈고 상원 외교위원장을 맡고 있는 존 케리 상원의원(매사추세츠)의 지역구민인 점도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소식통은 “당초 케리 의원과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등 고위 인사 여러 명이 특사 후보에 올랐지만 현직 정치인이나 관료가 가면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전직 대통령으로 낙점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북한은 곰즈가 억류된 직후부터 비선 라인을 동원해 미측에 ‘고위 인사를 특사로 보내면 곰즈를 풀어주겠다’고 제의해왔다”며 “그러나 북한은 특사가 방북하면 ▶ 예비 6자회담 개최 ▶금융제재 중단을 포함한 대북제재 완화 등 ‘정치문제’도 함께 논의할 것을 요구해 협상이 난항을 겪어왔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특히 북한은 미국이 조만간 개시할 금융제재가 2005년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 사태처럼 북한에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해 최근까지 해외 예치금을 중국 등 비교적 안전한 지대로 빼돌려 왔다” 고 전했다. 소식통은 “그러나 미국 정부는 특사가 방북하면 곰즈의 석방만을 논의해야 하며, 다른 이슈가 혼합(mix)돼선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며 “카터는 오바마 행정부로부터 곰즈의 석방문제 외에 다른 임무(mandate)를 부여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도 “카터가 지난해 북한에서 미국 여기자 2명만 조용히 데리고 나온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같은 궤적을 밟게 될 것”이라며 “북한의 희망대로 6자회담이 열리려면 천안함 사태에 대한 사과와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있는 조치 등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천안함 사태 이후 미 집권당 원로 인사의 첫 방북인 만큼 카터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6자회담 재개 문제 등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카터가 남북 정상회담을 중재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카터는 미국이 영변 핵시설 폭격을 검토했던 1994년 6월 평양에서 김일성을 만나 북핵 1차 위기를 해소하고 남북 정상회담 합의를 끌어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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