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세상] 홍상의 천안소방서장을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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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천안으로 발령받은 홍상의 서장은 간부직원들을 집중적으로 혼낸다. 전 직원과 함께 할 수 없어 모범을 보이라는 뜻이다. 이름을 빗대 ‘붉은 상의’의 란 이메일 아이디를 가질 정도의 유머는 있다. [조영회 기자]

“첫 발령지였던 천안에 다시 오게 돼 감회가 새롭습니다.”

지난달 천안으로 발령을 받은 홍상의 천안소방서장이 감회에 젖은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천안은 그에게 조금은 남다른 의미를 준다. 처음 발령받아 3년 반 정도를 이곳에서 보냈다. 20여 년 전이지만 엊그제 일같이 생생함이 묻어난다.

천안 성거의 한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20억원 정도 피해를 입었던 일을 제일 먼저 꼽았다. 검은 연기가 경부고속도로를 뒤덮어 교통까지 마비시킬 정도였다. 상수도 배관이 깔려있지 않아 급수에 큰 어려움을 겪었단다. 천안소방서 창설이래로도 손꼽히는 화재였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현장을 지휘했던 간부 직원이었지만 17년 뒤 다시 ‘대장’의 자리로 천안을 찾았다. 그는 직원들에겐 ‘무서운 큰형’ 같은 사람이다. 자신도 평소 간부들을 많이 다그친다고 인정했다. 일일이 직원들과 생활을 못하니, 직원들이 간부들을 보고 배웠으면 하는 속내가 담겨있다.

“지금은 3교대가 돼 나아지긴 했지만 근무 패턴이 다르다 보니 자기개발이나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내기가 어려울 때가 많아요. 특히 천안소방서는 연간 2만건 이상 출동하는 바쁜 곳이에요.” 직원들에게 지원을 제대로 못해준다며 미안한 기색을 비췄다.

조금은 차가워 보일 수 있는 인상이지만 재미있는 유머감각으로 완충시킨다. 그의 이메일 주소가 대표적인 예. ‘redjacket’ 붉은 상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자신의 이름이 ‘홍상의’니 딱 맞는 별칭이다. 직업과도 잘 어울린다.

홍 서장은 지역 주민들과의 연계, 소통으로 업무효율을 높이기도 한다.

지난 10일 천안, 성환, 병천, 입장 등 4곳의 의용소방대와 협약을 맺었다. 매년 이 시기에 말썽을 부리는 말벌을 퇴치하기 위한 약속이다. 말벌집 제거 법을 배운 의용소방대원들이 신고가 들어오면 출동해 처리한다. 너무 위험하다 싶으면 119로 다시 연락해 소방대원들이 직접 해결한다.

그의 능력은 여러 곳에서 인정받았다. 서산소방서 근무 당시 대산 석유화학단지에 전문 화학구조대가 없었다. 이때 국비를 끌어와 화학구조대를 만들었다. 주위의 반대와 우려가 많았지만 그냥 밀어붙였다. 울산에서 1년 정도 근무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 지금은 없어서는 안될 부서다. CI(Corporate Identity)에 대한 개념이 적었을 당시인 1996년, 논문을 통해 CI의 중요성과 상징성을 발표하기도 했다.

글=김정규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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