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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국 위상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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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중국의 '작은 거인' 덩샤오핑(鄧小平)은 1988년 베이징(北京)을 방문한 인도의 라지브 간디 총리에게 "21세기에 '아시아의 시대'가 온다면 그 시기는 인도와 중국이 경제선진국이 된 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중앙정보국 산하 국가정보위원회가 최근 공표한 2020년 글로벌 세력지도는 중국과 인도를 19세기의 통일독일과 20세기 초 미국의 출현에 견주고 있다.

2020년에 중국의 국민총생산(GNP)은 미국을 제외한 모든 서방 국가를 능가하고, 인도의 GNP는 유럽에 육박하거나 능가할 것으로 예견했다. 높은 성장률과 확충일로의 군사력, 하이테크기술 습득, 거대 인구자산을 바탕으로 경제적.정치적 강국으로 발돋움해 '아시아의 세기'를 주도해 간다는 전망이다.

중국의 경제대국화는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지만 중국과 인도를 묶어 '아시아 세기'의 주역으로 떠올린 것이 눈길을 끈다. 16년 전 팔순 노인 덩샤오핑의 통찰력이 새삼 돋보인다. 통합유럽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의 국제적 약진을 가볍게 볼 수는 없지만 인구의 노령화가 이들에게 큰 덫이라고 한다.

'세계의 공장''싼 가격'(China Price)의 중국과 '소프트 강국' 인도가 두 축을 이룬다. 동북아와 동남아 국가들이 중국에 맞서 제휴를 돈독히 하거나 미국을 방파제로 삼으려 들고, 인도의 경제적 자석은 북쪽의 중앙아시아와 이란 및 여타 중동국가들을 끌어당긴다. 유럽연합이 계속 확대되면서 '유럽이 어디까지냐'는 의문이 일 듯 중국과 인도가 주도하는 '아시아의 세기'에서도 '아시아가 무엇이냐'보다 '아시아가 어디까지냐'가 문제가 될 판이다.

중국과 인도 뒤 먼발치에서 브라질과 인도네시아.남아프리카가 달려오지만 '동북아시대의 중심' 한국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골드먼 삭스의 글로벌 리서치 센터가 작성한 2050년 세계 10대 경제강국 지도에서도 한국은 '실종' 상태였다.

세계 경제가 빠르게 통합되면서 동과 서, 남과 북의 전통적 경계가 갈수록 흐려지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지정학적.지경(地經)학적 구도가 펼쳐지고 있다. 싱가포르 국립대학의 리콴유(李光耀)공공정책대학원이 미국의 유수 연구기관들과 '중국과 인도: 다음의 세계 강국에 대한 이해'라는 국제 콘퍼런스(4월)를 준비하고 나선 것도 주목을 끈다.

제조업을 중국에 내주고 '반도체 이후'의 대안도 신통찮다면 우리는 중국 옆에서 뭘 먹고살 것인가. 우리의 중국정책이 북한 문제에 발목 잡혀 있는 한 중국의 오만과 우리의 저자세는 시정되기 어렵다. 2020년까지 이 지역의 가장 큰 변수 중 하나가 북한의 체제 변형 내지 붕괴 여부다. 중국은 북한과 '피를 나눈 특수관계'다. 중국이 북한과의 접경지대에 대규모 병력을 포진시킨 것은 탈북사태 예방보다 유사시 북한 내로 진입해 기득권을 챙기려는 의도로 해석되기도 한다.

북한과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국.중국.일본 간의 이해 각축전에서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하며 한반도 4강과 한.중.일 동북아 3각관계는 어떻게 정립해 나갈 것인가. 두 국가 간 양자관계들의 조합을 넘어 아시아라는 큰 틀에서의 조율이 필수적이다. 독일과 프랑스 간의 문제를 통합 유럽의 틀 속에서 푸는 것과 같은 이치다. 큰 흐름을 내다보고 우리 자신을 재정립하는 예언자적 국가 비전이 없는 한 중국은 우리에게 기회가 아닌 위기일 뿐이다.

변상근 월간 NEXT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