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特使부터 북한에 보내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 추방과 핵재처리 시설 재가동을 선언함으로써 한반도 안보에 적색 경보가 내려졌다. 설마했던 우리 정부도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총력외교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자주와 생존을 앞세운 북한과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저버리며 떼쓰는 북한과는 협상하지 않겠다는 미국 모두 대화로 사태를 풀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미 정부가 경제봉쇄까지 동원해 북한 다루기에 적절한 '맞춤형 봉쇄책'을 구상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대로 가면 한반도 긴장이 무력충돌로까지 발전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북한은 이미 밝힌 5㎿e 원자력 발전소를 재가동하고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한편 미국의 대북 봉쇄책은 북측의 핵무기 추가 제조까진 적어도 수개월의 시간이 있다는 나름대로의 계산에 근거하는 것 같다. 문제는 한국이다. 북핵사태의 심각성에 무심했던 국민도 점차 위기를 느끼고 있다. 국제금융 시장도 한반도 위기 가능성에 따라 출렁이는 기색이다.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은 시차를 두고 증폭돼 다가올 것이다. 한국의 안보는 물론, 경제 역시 북핵의 볼모가 된 꼴이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한국이 북측 최고지도자에게 우리뿐 아니라 국제사회 모두의 우려를 직접 전달하지 못한다면 이는 햇볕정책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총력외교 시발점은 대북 특사 파견이 돼야 마땅하다.

또 북한은 전력생산을 위한 핵시설 재가동이라는 변명이나 "우리 민족끼리 위기를 헤쳐나가자"는 식의 주장이 설 땅은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은 그토록 중시해 온 '자존'과 '생존'사이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둘 모두 챙기기엔 상황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자존을 크게 양보하지 않고 생존의 방도를 찾으려면 우선 한국의 특사부터 만나 무얼 어떻게 해결할지 논의해야 한다. 그래야 햇볕정책도 살고 북한의 존립도 보장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