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아주 쉬운 일이 또 누군가에겐 꿈에도 그리는 소망일 수 있습니다. 첫째를 낳고도 둘째를 낳고도 가보지 못한 친정집.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와 살면서 팍팍한 형편에 친정집 나들이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이주 여성들이 꿈결에도 그립던 친정집에 갔습니다. 감동의 현장에 마음 따뜻한 배우 장서희와 여성중앙이 동행했습니다.
한국여성재단에서는 결혼 이주 여성들 가운데 오랫동안 친정을 찾지 못했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친정집 방문은 엄두도 못 내는 가정 가운데 30가족을 선정해 친정집에 보내주는 ‘날자’ 프로젝트를 올해로 4년째, 삼성생명의 후원으로 진행 중이다. 9월호의 ‘나눔 이슈’로 ‘날자’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여성중앙에서는 동행할 배우로 장서희를 떠올렸다. 행복한 만남이지만 어쩌면 서글플 수도 있을 ‘동행’에 담백하게, 진정성을 갖고 참여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 중 하나였다. 새로운 영화 촬영을 코앞에 두고 있던 그녀는 행사의 취지를 듣고는 기꺼이 시간을 내주었다. 불교 신자인 장서희는 연예인들은 ‘몸으로 보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멀리서 오토바이 한 대가 일행의 버스 앞으로 다가온다. 첫 방문 집인 딘티싱·김대규씨 부부의 큰딸인 네 살 가영이가 외삼촌(딘티싱의 오빠)의 오토바이를 타고 일행을 마중 나왔다. 까만 얼굴의 베트남 외삼촌도, 눈웃음치는 가영이도 그림처럼 정겹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와본 외갓집에서 가영이는 신이 났다. 이틀 전에 처음 만난 외삼촌과 벌써 쿵짝이 맞아 삼촌이 장난을 걸면 까르르 넘어간다. 가족은 축제 분위기다. 더구나 한국에서 즐겨 봤던 국민 드라마 ‘아내의 유혹’의 구은재가 온다는 소식이 딘티싱을 들뜨게 했다. 멀찌감치 버스를 세워두고 논 옆으로 난 길을 걸어 집에 도착했다. 스태프들에게 “진짜 구은재 와요? 진짜요?” 묻던 딘티싱은 대문 안으로 ‘진짜’ 장서희가 들어오자 팬클럽 소녀처럼 꺅! 환호한다.
돌아가신 친정엄마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를 하면서는 벌써 눈가가 촉촉이 젖어든다. 감상적인 설움만큼이나 힘든 건 팍팍한 현실이다. 경제적으로도 그렇지만 아이들의 앞날을 생각하면 답답해진다. 부부가 가장 걱정하는 건 학교에서의 왕따 문제다. 두 사람은 아직 네 살밖에 안 된 가영이를 보면서 심각하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들은 얘기가 많아서다. 이주 여성의 아이들을 엄연한 ‘한국 아이’로 받아들이기에 우리의 시민 의식이 성숙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아이들이 자신이 받은 상처로 인해 엄마를 원망할까 봐, 엄마를 외면할까 봐 그게 벌써 걱정이라고 딘티싱은 서툰 한국말로 어렵게 얘기를 꺼냈다.
두 번째 집에 방문하기 전 일행은 한 가지 소식을 전해 들었다. 방문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부티엉아가 둘째 아이의 이름을 ‘아내의 유혹’의 여주인공 ‘민소희’를 따라 ‘소희’로 지었다는 것. 재밌는 인연이다. 앳된 얼굴의 ‘소희 엄마’ 부티엉아는 웃음도 눈물도 많다. 장서희를 보고는 반가워 끌어안고 내내 함박웃음이더니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자 그렁그렁 울음이 가득하다. 아예 휴지 상자를 곁에 두고 눈물을 훔치는 딸을 친정아버지가 물끄러미 쳐다본다. 스물일곱의 두 아이 엄마에게 편견 많은 타지에서의 생활은 이래저래 녹록지 않은 듯했다. 남편 장동현씨는 엉거주춤 곁에 앉더니 “내가 너무 못해 줬다”며 미안해한다.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못해 준 게 너무 많다고.
첫해엔 이 여성들이 친정집에 눌러앉겠다고, 안 돌아가겠다고 하면 어쩌나 그게 제일 두려웠단다. 그런데 한 번도 그런 일은 없었다. 강경희씨는 이주 여성들을 ‘프런티어 같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베트남의 친정 식구들, 그리고 한국에서 일군 새로운 가족을 모두 돕고 또 지켜야 한다는 의무를 짊어진 사람들이라고. 안 돌아올까 봐 섣불리 걱정하던 자신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그녀들은 현실에 씩씩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힘들 줄 알고도 한국에 시집을 온다.
“196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서독으로 파견되었던 간호사들을 떠올려보세요. 우리의 10만원이 여기서는 100만원처럼 쓰이니까요.” 휴대폰 부품을 만들고, 옷감의 실밥을 뜯으며 수입의 일부나마 친정에 보낼 수 있어서, 그녀들은 고단한 현실을 잊는다. 하찮은 우월 의식으로 저도 모르게 이방인 취급을 했을지도 모를 이주 여성들은 어쩌면 우리들의 그늘진 역사였다. ‘동생들 공부시키고, 풀죽이라도 더 먹이려고’ 고국 땅을 떠났었다던 1960, 70년대 서독 파견 간호사들과 다르지 않은.
동행기 그 이후…
‘다문화 사회’, 여성중앙이 함께합니다
‘결국은 우리의 문제’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2010년 현재 외국인 주민은 주민등록 인구의 2.2%, 국제결혼 부부의 2세가 1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네들의 삶이 고달프다면 우리의 가혹한 차별 때문일 수 있고, 이웃의 냉대로 힘겹다면 우리에게 편견이 있어서겠지요. 그들이 낳은 2세들 역시 차별과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결혼 이주 여성들을 위한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는 한국여성재단과 함께 여성중앙에서는 우리 사회가 긍정적인 다문화 국가로 자리 잡기 위한 고민들을 나누겠습니다.
이주 여성들이 겪는 ‘불편’의 소리를 전하고, 아이를 키우는 이주 여성의 ‘두려움’인 교육 콘텐트를 공유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여성중앙 독자들의 ‘재능 기부’가 이어질 수도 있겠지요. 이주 여성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김치 담그는 법을 알려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다름’은 그대로 인정하고 그들을 진정한 이웃으로 지지해 준다면, 우리 안에 그런 정서가 자리를 잡아갈 즈음이면 그들의 2세들은 더 이상 엄마의 나라를, 엄마의 존재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여성중앙 8월호
기획_여성중앙 안지선 기자
사진_조세현(icon studio)
메이크업_박정민(헤어커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