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名門을 갖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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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호나우두·지단·피구·라울 VS 히바우두·클로세·말디니·나카타·차두리.

어느 쪽이 세계 올스타팀일까.

스페인의 프로축구팀 레알 마드리드가 올해로 창립 1백주년을 맞았다. 지난 19일(한국시간)에는 세계올스타와 창립 1백주년 기념 친선경기를 했다. 그런데 출전선수를 보니 세계올스타팀이 오히려 초라할 정도다. 도대체 브라질(호나우두)·프랑스(지단)·포르투갈(피구)·스페인(라울)의 최고 선수들이 한 팀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인 베르나베우 스타디움은 좌석수가 8만석이 넘는다. 서울월드컵경기장보다도 많다. 그러나 홈 경기가 벌어질 때면 세계 최고의 스타를 보려는 팬들로 꽉꽉 들어찬다. 이들은 지단의 패스를 받아 피구가 드리블한 후 호나우두나 라울이 슛하는 모습을 보며 환호한다. 1백년의 역사와 최고의 선수들. 레알 마드리드를 '명문팀'이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 이유다.

지난 10월 쿠바에서 망명한 특급 투수 호세 콘트레라스가 25일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와 입단계약을 맺었다. '야구 강국 쿠바가 낳은 최고의 투수'라는 평가까지 받는 콘트레라스의 계약 조건은 4년간 3천2백만달러(약 3백85억원). 쿠바 출신으로는 역대 최고액이지만 보스턴 레드삭스 등이 제시한 연봉보다는 적다.

콘트레라스가 손해를 보면서까지 양키스와 계약한 단 하나의 이유는 "양키스에서 뛰고 싶다"였다. 모든 팀에서 탐내는 특급 투수가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가고 싶어 하는 팀. 그 팀을 '명문'이라고 부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일개 운동팀이긴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이 자랑하는 '명품'이고, 뉴욕 양키스는 미국이 자랑하는 '명품'이다.

우리도 명문을 갖고 싶다. 세계에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는 상품을 갖고 싶다. 아직 역사가 일천해 명문팀이 생길 시간이 없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명문팀이 생길 토양은 있는가. 슬픈 현실이지만 '아니올시다'다. 우선 특정 팀이 독주하는 것을 일절 용납하지 않는다. 우수 선수를 모조리 데려가는 것은 전체 판을 깨뜨리는 행위로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데려갈 수 있어도 다른 팀을 위해 양보하는 아량이 필요하다. 연승 기록은 깨져야 하고, 전관왕(全冠王)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관중들도 '결과가 뻔하다'며 경기를 보러 가지 않는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 아직 과정을 즐길 만한 여유는 없다.

콩 한쪽도 나눠 먹는 것이 한국의 미덕이다.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 적용된다. 대표선수도 적당히 팀별로 배분한다. 특정 팀 선수들이 너무 많이 대표선수가 되면 다른 팀 감독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 경우는 피해야 한다.

돈 많다고 선수들에게 너무 좋은 대우를 해주면 돈없는 구단은 어쩌란 말이냐. 위화감(違和感)을 조성하므로 그런 것도 자제해야 한다. 뭐 이런 저런 이유로 한국 스포츠계는 '평등'을 추구한다. 명문 구단이 생길 여지가 없다.

어쭙잖은 '평등 사상'은 한국 사회 전체에 퍼져 있다.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보다 차라리 '하향 평준화'가 낫다고 주장한다. 한국에 명문 고등학교는 있는가, 유수한 학생들이 유학오고 싶어 하는 명문 대학교는 있는가. 그렇다면 세계에 자랑할 만한 명문 기업은, 또 명품은 있는가. 남이 잘될 때 쓰린 배를 주무르지 말고 박수를 쳐주는 문화, '위화감'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는 사회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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