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빵 구워 이웃 돕는 무명 배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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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외로운 노인과 노숙자들을 도우면서 인생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웃 사랑은 내 삶의 고난을 이겨내는 데 큰 위안과 힘이 되고 있어요."

1980년대 인기 어린이 드라마 '호랑이 선생님'에 출연, 연기생활을 시작한 배우 성인성(31·서울 동작구 사당동)씨.

그는 매주 금요일이면 서울 종묘공원에서 풀빵을 굽는다. 2000년 12월부터 팬클럽 회원 3∼4명과 함께 하루 7백∼8백여개의 풀빵을 만들어 노인들과 노숙자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그의 이웃 사랑은 '풀빵 봉사'에 그치지 않았다. 96년부터 서울 명동에서 노래를 불러 모은 돈과 간간이 드라마에 단역으로 나가 받은 출연료 등으로 독거노인들의 개안(開眼)수술 사업을 지원했다. 지금까지 노인 8명이 혜택을 봤다. 또 지난해 9월에는 모 통신회사의 광고 출연료로 받은 수백만원을 육군 12사단 장병들에게 나눠줬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대상이었다.

그는 처음에 '인생공부'라는 막연한 이유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풀빵 봉사는 실패를 거듭한 그의 삶에 버팀목이 되고 있다.

"96년 연기 생활을 다시 시작했으며, 2000년 영화 제작에 손을 댔다가 실패해 빚만 떠안게 됐습니다. 이듬해에는 어렵게 오디션을 통과해 주연을 맡은 영화 '아티스트'가 흥행에 참패했죠. 설상가상으로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도 이 무렵 돌아가셨어요."

그는 풀빵을 노인들에게 나눠줄 때 아직도 선친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고 했다. 거듭된 실패는 한때 그를 극한 상황까지 몰고갔다.

"너무 괴로워 자살을 결심한 적도 있었죠. 칼을 가슴에 품고 한강 다리에도 여러번 갔었죠. 하지만 이렇게 죽을 순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도움을 주면서 용기를 북돋워준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결국 제가 해왔던 봉사활동이 저를 살린 셈이죠. 나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됐어요."

영화제작 실패로 그는 아직도 수천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 하지만 "어려울 때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하는 그의 손길은 풀빵 굽기에 분주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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