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즐겨 읽기] '행복한 허무주의자의 열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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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행복한 허무주의자의 열정

박이문 지음, 미다스북스

304쪽, 1만5000원

원로 철학자의 자전적 에세이. 시골 출신의 한 조숙한 문학소년이 고향을 떠나 서울, 파리, 미국, 독일, 일본에서 지적 방랑을 거듭한다. 그러면서 사르트르의 실존적 허무주의를 거쳐 오늘날 문학과 철학의 집적으로서 '둥지의 철학'을 추구하기까지를 담담하게 토로한다.

저자는 20대인 50년대 말, 60년대 초 '한 인간의 인생은 당사자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르트르의 글에서 '한 줄기 구원의 빛을 발견한 것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또 프랑스 유학 시절 데리다의 수업을 듣고는 그를 단순한 스승이 아니라 '삶의 진로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은사'로 삼는다. 이후 프랑스, 미국 등에서 강단에 서는 동안 자신의 철학을 '행복한 허무주의'로 정리하게 된다. 이것은 '인간과 동물의 삶이 똑같이 근본적으로 허무하지만,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각자의 자유로운 선택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그는 또 '인간다운 삶이란 동물이 아님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삶'이라고 정리한다.

그가 인생의 마지막 작업으로 삼고 있는 것은 '둥지의 철학'. 그는 '진리는 객관적 사실의 발견이 아니라 관념적 구성물'이며 철학도 결국 '언어를 통해 세계를 관념적으로 재건축하는 일종의 관념적 둥지짓기'라고 규정한다. 자신의 철학과 삶을 융합해 철학적 화두로 끝까지 이끌어 갈 수 있다면 분명 행복한 철학자임에 틀림없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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