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적 검증 없이 열리는 국립미술관 '회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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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관장 오광수)이 내년 2월 2일까지 열고 있는 '사유와 감성의 시대'전은 2000년부터 시작된 회고성 전시의 연장이지만 30년도 안된, 그것도 많은 비평적 난제를 남기고 있는 미술을 역사화하는 무모한 시도이기에 난감하다. 미술활동 자체는 과거라도 비평적 노력은 언제나 현재적이며, 당대의 활동과 그 시대 미술에 관한 미술사적 검증은 근본적으로 그 궤를 달리 하게 마련이다.

게다가 1970년대 미술은 소위 화단의 주도권 다툼과 관련된 많은 얼룩을 남겨 왔고, 비평적 담론들 역시 당시 화단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주류들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는 점에서, 다음 대에 이르러 엄격한 비평적 검증을 통해 재평가돼야 할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한 국가의 미술문화를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 차원에서의 '회고'는 이 미술들의 현재적 가치를, 주류 중심적 논리로 덮어씌워 성급하게 역사화하려 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방법에서 앞선 두 번의 전시와의 유기적 생산성 도출에도 실패했다는 점에 있다. 2000년 '한국현대미술의 시원', 2001년 '전환과 역동의 시대'에 전혀 다른 작품을 출품했던 작가가 다시 이번 전시에 출품함으로써 그 작가가 바로 이 작가인지, 어떻게 한 작가가 이렇게 다른 미학적 토대를 지닌 작품들을 생산하게 됐는지에 관한 연구도 없이, 역사적 맥락의 앞뒤를 터무니없는 10년 주기설에 입각해 잘라 버림으로써, 자신들이 기획했던 앞 전시와의 연결고리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 도록에 난무하는 '모노크롬''모더니즘''무위(無爲)' 등의 검증되지 않은 화려한 수사적 용어들 역시 당대의 미학적 방법론과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전통의 비판적 극복으로서의 역사적 과정 개념인 서구 모더니즘이 우리의 특수한 역사적 현실에 적용될 수도 없거니와, 모노크롬 개념을 당시 우리 미술에 적용하는 것에도 무리가 있다.

물론 이천수백년 전 노·장자의 사상 또한 오늘날 현대미술의 방법론으로 차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위의 세계에 무슨 현대미술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세 차례의 회고성 전시들은 현대미술의 비평적 방법론과 기초적인 비평 용어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학예연구실의 일천한 역량을 노출하고 있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민들의 혈세로 조성된 예산을 소비하는 공적기관으로서 한 국가의 미술문화를 대표하기에, 미술판에서 일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 위상에 값하는 전문역량과 투명성, 그리고 책임을 묻는 일은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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