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끌수록 북한문제 더 꼬여" 부시에 협상명분 실어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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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 의회 일각에서 대북(對北) 협상론이 대두하고 있는 것은 북한 문제가 이라크 문제를 해결한 뒤에 대응에 나서도 될 만큼 한가한 문제가 아니라는 현실적 판단에 근거한다.

이라크 문제가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까지 걸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북한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고 협상론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계속 또 다른 카드로 미국을 압박해 올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15일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협상의 필요성을 적극 주장한 조셉 리버맨 민주당 상원의원은 현재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같이 여러 냄비를 다뤄야 하는 초강대국에는 한쪽 냄비는 약한 불에, 또 다른 냄비는 강한 불에 올려 놓고 끓는 냄비에만 신경써도 되도록 세상이 내버려 두지 않는다. 끓는 냄비에만 신경을 쓰다보면 약한 불 위의 냄비도 어느 새 끓어 넘치게 될 것이다. "

리버먼 의원은 또 "북한에 군사적 위협을 가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외교적 압력에만 의존할 정도로 시간적·상황적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면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상황이 어렵다고 이를 더 위험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폐기 상태에 이른 북·미 제네바 합의를 '어떡하든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공화)도 협상론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15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1994년 북한에 핵시설 공격 가능성을 경고했던 상황을 소개한 뒤 "북한은 현재 부시 행정부가 우려하는 대량살상무기의 확산보다는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아내는 데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급적 빨리 북한이 (협상에 의해) 설득당하든 아니면 어찌할 수 없어서든 핵개발 계획을 철회토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뉴욕 타임스도 15일 '북한은 기다리지 않는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이라크 문제가 해결된 뒤면 북한은 어쩌면 이미 몇 개의 핵무기를 더 만들어 놓았거나 미국 본토까지 도달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확보해 놓은 상태일지 모른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전 부통령 후보와 차기 상원 외교위원장 등 거물급 의원들이 협상론을 들고 나온 것은 부시 행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한다기보다는, 어떻게 깡패국가와 협상할 수 있느냐는 미국 내 여론을 무릅쓰고 부시 대통령에게 협상에 나설 명분을 주는 성격이 짙다"고 분석했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joon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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