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돈 없으면 손 떼라”… 용산 개발 새 국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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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자금난으로 난항을 겪고 있는 서울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 투자자 간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며 새 국면을 맞고 있다. 결과에 따라 사업 구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고, 장기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사업의 최대 주주인 코레일은 19일 건설 투자자의 대표회사인 삼성물산에 “자금마련 책임을 지지 않겠다면 사업에서 빠지라”고 최후통첩했다. 코레일은 이날 자산관리위탁회사인 용산역세권개발㈜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이같이 요구했다.

코레일 김흥성 대변인은 “삼성물산은 대표 주관사로서 사업 정상화를 위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 달라”며 “오는 23일까지 자금마련을 위한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자산관리위탁회사의 경영권을 내놓으라”고 말했다. 용산역세권개발㈜은 삼성물산의 계열사로 대표이사 등이 삼성물산 출신이다.

김 대변인은 “사업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삼성물산은 스스로 일개 건설 투자자라는 표현을 쓰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건설 투자자들이 지급보증 규모를 당초 2조원에서 9000억원대로 줄이겠다는 중재안을 거부한 것을 염두에 둔 말이다.

코레일은 삼성물산이 자금을 마련할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 삼성물산을 제외하고 사업을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사회 등을 거쳐 용산역세권개발㈜에서 가장 많은 지분(45.1%)을 갖고 있는 삼성물산의 경영권을 빼앗아 사업 주도권을 박탈하겠다는 것이다.

코레일은 삼성물산이 빠지면 용산역세권개발㈜의 구조를 전면 개편하고 외부 건설 투자자들에 문호를 개방한다는 방침이다. 김 대변인은 “삼성물산이 대표 주관사에서 빠진다면 다른 16개 건설 투자자도 (지급보증을 거부해 온) 기존 입장을 바꿀 것”이라며 “이미 삼성물산 대신 사업 참여 의사를 밝힌 건설사들이 있다”고 말했다. 코레일은 다른 출자사들과 서울시에 대해서도 사업 정상화를 위해 협조해 줄 것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은 보도자료를 내고 “코레일의 주장이 일부 사실과 다른 점도 있지만 사업 성공을 위해 코레일의 요구 사항을 충분히 검토한 뒤 수용할 것은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삼성물산은 이어 “삼성물산을 비롯한 건설 투자자들도 이 사업이 예정대로 잘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위원은 “출자사들 간의 대립은 문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며 “침체된 부동산 시장이 되살아나지 않는 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기약 없이 떠도는 사업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서울 한강로 철도정비창 부지와 서부이촌동 등 일대 56만6800㎡에 업무·주거·상업·문화시설 60여 동을 짓는 민관 합동 도시개발사업. 계획 연면적이 317만㎡로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의 다섯 배다. 사업비 31조원에 참여한 기업만도 30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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