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우울했던 서민들:한탕주의·뒷북정책에 집값 출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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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올 한해는 많은 사람이 집값 불안 속에서 살았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가격 급등세는 서민들의 마음을 울적하게 만들었다. 정부 정책의 중심이 '부동산값 잡기'였을 정도로 경제 부문의 민감한 사안이 됐다. 올 한해의 부동산 투자 행태는 어떠했는지, 정부정책은 왜 뒷북이나 치고 있었는지 등을 2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올해 부동산 시장에는 한탕주의가 만연했다. 분양받은 뒤 즉시 되팔아 단기차익을 노리는 투자행태가 퍼졌고 업체와 재건축조합 등은 이에 편승, 분양가를 부풀렸다.

특히 아파트분양권 전매제한이 시행되는 투기과열지구에서는 단기차익이 생기면서도 청약과 분양권 전매에 제한이 없는 주상복합아파트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졌다. 10월말 선보인 서울 서초동 더샵의 경우 주상복합아파트 2백25가구 가운데 이달 초 현재 97가구가 전매됐다.함께 분양된 원룸(1백4가구)과 오피스텔(2백60실)이 10% 정도만 주인이 바뀐 것과 비교된다.

최근 평균 경쟁률 56대 1을 기록한 서울 목동 하이페리온Ⅱ는 현대건설이 3개월간 분양권 전매금지 조건을 내걸었는데도 거래가 활발하다. 인근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잔금을 석 달 후에 지급하는 조건으로 거래된 분양권이 전체 5백76가구 중 30%는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부동산 시장의 한탕주의는 '전국민의 떴다방화'를 촉진하고 있을 정도라고 전문가들을 지적한다. RE멤버스 고종완 사장은 "오죽하면 중개업소들이 주도해 아줌마 펀드까지 만들 정도겠느냐"고 말했다.

기존 아파트값도 껑충 뛰어 중앙일보 조인스랜드와 텐커뮤니티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값은 평균 27.83%,신도시는 23.91%, 수도권은 19.65% 각각 올랐다. 재건축 기대로 단기 투자세력이 몰렸던 서울 강남구 20평형 미만은 38.18% 급등했다.

주택업체들도 사람들이 몰릴 만한 곳에서는 분양가를 부풀려 이익 챙기기에 급급했다. 부동산뱅크 조사에 따르면 올해 11차례 나온 서울 동시분양 아파트의 분양가는 평당 평균 8백4만원으로 지난해보다 평당 1백23만원이나 뛰었다. A사 관계자는 "주택업체들은 공사비를 높이고 시행사(재개발·재건축 조합 포함)는 이익을 많이 남기기 위해 분양가를 인근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값에 맞추고 있다"며 "특히 대형업체일수록 이 같은 경향이 심한데 업체가 제시한 공사비의 20% 정도는 거품일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서울지역 동시분양에 참여한 1순위 청약자(무주택 우선 포함)는 67만5천6백51명으로 평균 4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는 현행 1순위 청약제가 도입된 1997년 이후 최고의 경쟁률이며 청약자 수도 최대다.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사장은 "청약통장 1순위자가 올들어 급증했고 집값이 뛰면서 단기 전매차익을 노리는 가수요까지 대거 청약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시장이 달아오르자 부동산 정책은 어느 해보다 많이 쏟아졌다.그러나 치솟는 아파트 값을 붙잡는 데 기여했다는 일부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에 돈이 몰린 주된 원인인 저금리는 손을 대지 못하고 변죽만 울렸다는 지적이 많다.

종합적인 대책 없이 '단기처방''뒷북''땜질식'의 연속이다 보니 시중 부동자금은 정부의 몽둥이를 피해 새로운 투자대상을 찾아다니며 숨바꼭질을 계속했다.

지난해 연말 이후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집값이 큰 폭으로 오르자 지난 1월 강남을 투기과열지역으로 지정한 데 이어 3월엔 서울 전체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해 분양권 전매제한 등의 조치를 취했다.

8월엔 강남 재건축 아파트들이 상승세를 주도하는 것으로 보고 재건축 규제 강화책을 발표했다. 9월 4일 투기과열지구를 수도권으로 확대하고 양도세를 강화하며 부동산 담보대출을 줄이는 내용의 종합대책을 들고 나왔다. 신도시 건설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가격이 오를 대로 오른 뒤에 나오기 일쑤였다. 서울 강남구 B부동산 김모 사장은 "이미 올 초 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재건축 투자수요가 거론됐는데도 정작 대책은 반 년 넘어서 나와 실효성이 적었다"고 말했다.

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바람에 시중 부동자금은 한 곳을 누르면 다른 곳이 튀어나오는 풍선처럼 규제가 없는 곳으로 옮겨다니며 과열을 낳았다. 아파트 분양시장을 누르자 주상복합아파트·땅 등으로 몰려갔다.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등 정부 조치는 한발 늦었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박사는 "정부는 하반기에 경기 동향을 보고 금리를 잡으려다 미국경제 부진 등으로 내수경기가 꺾이는 바람에 금리를 올릴 기회를 놓쳐 결국 부동산 투자 돈줄을 막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수요 억제책과 함께 정작 중요한 공급대책은 해를 넘기고 있다.정부는 서울 강남 규모의 신도시를 2∼3개 건설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대상지를 결정하지 못해 후보로 거론되는 지역들의 땅값만 들썩이게 했다는 지적이다.

황성근·안장원 기자

hs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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