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선박 석방→盧·鄭 공조→이인제 李지지→북핵 파문 李·盧 희비 교차한 하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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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2일 하루 동안 대선 후보들은 네차례를 웃고 울었다. 오전엔 미국이 북한 미사일 수송선을 석방했고,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대표가 민주당 노무현(盧武鉉)후보에 대한 정책공조·선거공조를 약속했다. 오후 들어 자민련 이인제(李仁濟)총재권한대행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를 13일부터 지원할 것이라는 소문이 흘러나왔고, 북한이 핵시설을 무조건 재가동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4개의 굵직굵직한 변수가 춤추면서 후보들의 애간장이 다 녹는 하루였다. 종반에 접어든 대선전에서 이들 변수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종반으로 접어들며 혼전 속으로 빠져드는 대선 가도에 핵폭풍이 발생했다. 북한이 12일 "핵시설 가동과 건설을 즉시 재개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선거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온 '북한 변수'가 다시 터진 셈이다. 그것도 대선을 불과 일주일 남겨둔 시점이다.

이날 북한의 입장 표명은 이슈 자체의 폭발력으로 대선 정국에 심각한 안보 논쟁을 부를 전망이다. 미국 부시 행정부가 강경 대응으로 맞설 경우 한반도 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1993년 북한 핵 위기 때 미국 클린턴 정부는 영변 등 북한의 핵시설이 있는 곳을 폭격하려고 했었다는 점이 시간이 지난 후 밝혀졌었다.

정치권은 이번 대선의 경우 북풍 변수는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당초 북풍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됐던 북한 미사일 수출선박에 대해 미국이 억류를 해제하면서다. 그래서 북한 미사일 수출선박 나포 사건은 97년 대선 직전 터져나온 '오익제 전 천도교령 편지사건' 정도로 여겨지는 분위기도 있었다. '찻잔 속 태풍'으로 비교됐던 셈이다.

이밖에 안보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확산되는 반미정서와 촛불시위가 대선에 미칠 영향을 따져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북한 핵 문제가 터지자 양당의 움직임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당직자들은 대선 구도에 미칠 영향을 따져보면서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나라당은 즉각 쟁점화에 나섰다.

이회창(李會昌)후보는 직접 이 문제를 민주당 노무현(盧武鉉)후보와 연결시키려고 했다.

李후보는 "김대중 정부는 북한 핵 문제에 대한 그동안의 안이한 인식을 버리고 대북 현금지원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盧후보의 대북 지원 계속 정책을 겨냥한 것이었다.

홍준표(洪準杓)1정조위원장은 "핵시설을 가동하려면 막대한 외화가 필요한데 지난 5년 간 정부와 민간차원에서 지원된 금액이 18억달러"라면서 "책임은 모두 민주당 정권에 있다"고 주장했다.

남경필(南景弼)대변인은 "미·일과 긴밀히 공조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당에선 "대북 강경론을 주장해온 보수세력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높아지면서 여중생 사망사건 무죄평결을 계기로 확산 중인 반미기류가 가라앉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보수층 응집력을 높여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李후보는 13일 특별 기자회견을 열고 이 문제의 본격적인 쟁점화에 나설 생각이다.

민주당은 일단 대선 쟁점으로 비화하는 것을 꺼리는 눈치다. 대북 강경론이 확산될수록 盧후보의 대북 화해정책이 먹혀들 공간이 줄어들 것으로 보는 듯했다.

이런 가운데 盧후보는 "북한은 핵시설 가동과 건설 재개 방침을 철회하고 신중히 대처해주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그는 이어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한국 정부와 북한·미국에 주문했다. 특히 미국에 대해서는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되지 않도록 협력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盧후보는 이같은 기조 위에서 한나라당의 정치적 공세를 차단하려는 생각이라고 한다. 그런 가운데 당 내에선 이 문제의 대선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도 엿보였다.

이해찬(李海瓚)선대위 기획본부장은 "지금 시점은 북·미 협상과정일 뿐"이라며 "북한 문제가 선거의 주요 변수가 되는 시대는 지난 만큼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상연 기자

chois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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