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적 反美보다 합리적 'No'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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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우리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을 격렬히 비판하고 행동으로도 표시한다. 지역적 회오리바람이 아니라 온 나라를 덮치는 태풍의 위력이다. 이 태풍의 부작용은 매우 심각한 국가적 불이익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이를 말리는 나라의 어른들이 없다. 당장 표를 얻어야 하는 대선 후보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득표와 관계가 없는 전직 대통령들조차 아무 말씀이 없다. 답답한 일이다.

현재 우리와 유사한 반미 분위기에서 살고 있는 나라가 몇이 더 있다. 이라크·이란·쿠바·북한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나라 국민보다 더 무모하게 하고 있다. 그들은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계산 아래 반미를 시작했지만 우리는 그런 계산 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와 이란은 자기 나라 석유자원 확보의 수단으로 반미를 택했고, 북한과 쿠바는 소련과 중국의 정치·경제적 지원을 기대하면서 반미를 택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 달리 세계는 그들을 외면했고, 그 나라 국민은 더 깊은 고난의 계곡으로 빠지게 됐다.

그래도 풍부한 석유자원을 갖고 있는 이라크·이란과 따스한 기온, 풍부한 과일과 설탕을 생산하는 쿠바는 제힘으로 버티고 있지만 우리처럼 자연자원의 혜택이 없는 북한은 먹는 것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최악의 경제파탄을 맞았다.

이러한 정황을 봤으면서도 우리는 지금 격렬한 반미로 나서고 있다. 아마 이로써 얻는 것이 있다면 세계 최강국에도 맞서는 우리의 모습을 세계 만방에 보이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 와중에서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이라크·이란·쿠바·북한과 비슷한 종류의 국가로 분류되고 경제도 급전직하로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 너무나 심각한 부작용이다.

지난 반세기를 한·미 양국은 서로를 '혈맹의 우방'이라고 하면서 각 분야에 걸쳐 협조를 다져왔다. 한국전에서는 미국이 우리를 도와 대한민국을 함께 지켰으며, 월남전에서는 우리가 미국을 도와 미국의 체면 유지에 기여했다. 경제분야의 협조도 매우 성공적이었다. 미국의 도움(자금·기술·시장)이 없었다면 우리의 경제 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며 앞으로 상당 기간 미국의 협조 없이는 우리 경제의 지속적 발전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지난 반세기의 한·미 양국의 협조는 '윈-윈(Win-Win)전략'의 대표적 성공 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우리가 생각했던 우리 몫과 적절한 대우를 미국으로부터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미 관계의 틀을 개선하고 보수하는 노력을 지속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 노력은 '윈-윈'이라는 틀을 깨서는 안된다는 전제가 있었다. 이제 '전부(全部)가 아니면 전무(全無)'로 대미 자세를 바꾼다면 잘못되는 경우에는 우리 사회 전반에 치명적인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늦지 않았다. 미국은 서유럽 국가들과 달리 우방에 대한 신뢰와 합리성에 대한 존중이 특별한 나라다. 미국과 교섭 경험이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미국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얘기도 그러하다. 흔히 미국을 '카우보이'와 '양키'들이 지배하는 나라라고 한다. 카우보이는 내편(우방)과 남의 편(적대국)의 구분이 분명하다. 이 구별의 차이는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낳는다.

한편 양키는 적의 논리에서도 합리성을 찾아 그에 맞는 대우를 한다. 비합리적으로 나오거나 속임수를 쓰는 경우에는 우방에도 철저한 계산을 하는 경향도 있다. 따라서 우리가 미국의 우방으로서 합리적인 대미 주장을 펴는 경우 그것이 미국의 요구에 대한 '노(No)'라는 내용이라도 미국은 이를 존중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대미 자세는 감정적 반미나 비굴한 '예스(Yes)'가 아니라 이성적 용미(用美)와 합리적 '노'를 발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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