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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파라치 ‘고래’ 못 잡고 ‘피라미’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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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원모(48)씨는 지난해 7월 ‘학원 등 불법운영 신고포상금제’가 도입된 이후 올 4월까지 서울·경기 지역에서 37곳을 신고해 포상금 1800여만원을 받았다.

유명 ‘학파라치’가 된 그가 입시 사교육을 줄이는 데 기여했을 것 같지만 포상급 지급 내역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원씨는 피아노·미술학원, 서예·무용·웅변학원, 바둑교실 등을 주로 신고했다. 성인용 드럼·점토교습소도 포함됐다. 대부분 수강료를 기준보다 더 받거나 행정적으로 등록 신고에 문제가 있는 곳이었다. 반면 대표적인 사교육인 수학·영어 등의 고액과외나 불법 영업사례는 없었다.

#지난해 7월부터 올 3월까지 서울·경기 지역에서만 95건을 신고해 3250만원의 포상금을 손에 쥔 김모(35)씨. 그가 불법운영 혐의로 신고해 포상금을 받은 곳의 81%(79건)는 ‘독서실’이었다. 그는 학파라치 활동 초기인 지난해 7~9월 서울·경기 일대에서 피아노·미술·바둑학원을 신고하다 지난해 11월부터 독서실로 눈을 돌렸다.

서울 각 구와 의정부·수원·부천 등을 누비며 독서실을 집중 고발해 건당 30만원씩을 챙겼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독서실도 학원법에 학원의 한 종류로 돼 있어 학파라치의 타깃이 됐다”며 “학원비 동결과 함께 독서실 이용료 기준금액도 안 올랐는데, 몇 천원씩 비싸게 받는 곳을 잡아 신고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김씨가 입시 사교육과 관련 있을 법한 곳으로 포상금을 받은 경우는 서울 마포구의 논술교실과 은평구의 서원이 고작이었다.

학파라치제가 시행된 지난해 7월 학원 밀집지역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강남교육청 관계자들이 밤 10시 이후 수업을 하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중앙포토]

정부가 사교육비를 잡겠다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행 중인 학파라치가 사교육 ‘고래’는 잡지 못하고 예체능이나 성인용 교습소 등 ‘피라미’만 잡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권영진(한나라당)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신고포상금제 지급 내역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다.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은 지난해 7월부터 올 7월까지 총 26억7000여 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했다. 서울이 6억190여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서울교육청의 포상금 지급 내역 가운데 국어·영어·수학 등 입시 관련 교과 학원은 전체의 37.9%(518건)에 그쳤다. 특히 고액 사교육의 주범인 개인과외를 신고해 포상금을 받은 경우는 27건(2%)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피아노·미술 등 예체능학원 37.8%(516건), 독서실 11.6%(159건), 바둑 3.2%(44건) 등이었다. 네일아트·커피바리스타 등 성인용 교습소도 5%(68건)를 차지했다. 가요전문학원·음치교실·재즈댄스·종이접기교실 등도 있었다.

교과부는 신고포상금제 등 학원정책이 효과를 보면서 사교육비가 줄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 제도가 음성적인 고액 과외나 교과 관련 학원은 못 잡고 입시와 관련성이 약한 곳을 신고하는 꾼들에게 거액의 세금만 지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영진 의원은 “학파라치제는 보조 수단에 불과한데 엉뚱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운영상 문제점을 보완하거나 폐지하고 공교육 대책에 더 힘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탁·박수련 기자

◆학파라치제(학원 불법 신고포상금제)=지난해 7월 교과부가 사교육비 경감 대책의 일환으로 도입했다. 학원의 심야교습 제한 시간(밤 10시) 위반, 수강료 과다 징수, 무등록 학원·교습소, 불법 고액과외 등 학원이나 개인 교습자의 불법 영업행위를 신고하는 시민에게 1회당 최고 2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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