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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 그 시절의 자화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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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10면

1956년 5월 15일, 정·부통령 선거전에서 민주당이 내건 선거 구호는 '못살겠다, 갈아보자'였다. 민주당이 뿌린 '이대통령 정치 밑에 무슨 일이 생겼나?'라는 전단은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이 저지른 패악 38가지를 낱낱이 까발렸다. 수세에 몰린 자유당은 '갈아봤자 더 못산다'라는 구호로 응수했다. 썩을대로 썩은 50년대 이승만 정권이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징후를 보여주는 구호와 전단들이었다.

캠페인을 보면 사회가 보인다. 내년 6월 30일까지 서울 전농동 서울시립대박물관(관장 정재정)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표어·포스터·전단 100년'의 제목이다.

1900년대 말 국채보상운동부터 2002년 엄마 젖 먹이기 캠페인까지, 지난 1백년 한국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공공 디자인물 3백여점이 나왔다. 우리가 살아온 살림살이 형편과 내용이 20세기 한국민의 얼굴처럼 떠오르는 근대화 1백년의 풍경이다.

전시 내용은 한마디로 '조국 근대화 시대'를 요약하고 있다. 송도영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가 지적하듯 '국민 일상을 관리하려는? 국가의 뜻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각종 계몽'으로 이어졌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에 일제가 물자절약과 공습에 대비하기 위해 여성들 하의로 통일시켰던 몸빼바지 장려 포스터는 50년대 중반 실시된 재건복시대 포스터로 이어진다.

50년대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쥐잡기 포스터와 '위생적 변소와 분변처치' 포스터는 디자인과 건강캠페인으로 돌아보는 '그때를 아십니까'다.

국민동원 사례에 있어 가장 두드러졌던 경우로는 '새마을 운동'을 꼽을 수 있다.

전국토를 녹색 깃발로 뒤덮었던 박정희 시대의 이 캠페인은 '하면 된다'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를 내걸고 유신독재의 이데올로기를 농촌사회에 주입했다.

또 하나, 한국전쟁 뒤 가장 강력하게 남한 사회를 틀어쥐었던 캠페인은 '반공'이었다. '잊지말자, 피에 젖은 6·25?로부터 '간첩잡는 아빠되고 신고하는 엄마되자'까지 온 국민을 반공방첩으로 내몬 표어와 포스터들은 지금도 우리 곁에 남아있다.

송도영 교수는 '87년에 일명 '넥타이 부대'라고 하는 도시의 직장인들이 가세해 거리에 몰려나간 민주화 운동의 열망은 국가 주도의 계몽과 리더십에 대한 거부가 이제 사회 전반에 자리잡게 된 시대적 변화를 단적으로 반영하면서 한 시대의 마감을 준비한 사건이었다며 2000년대에 진입하게 된 요즈음, 국민계몽의 시대는 끝이 났다고 분석했다.

이 전시는 새 시대를 맞는 현 시점에서 국가는 무엇이었고, 우리의 일상성은 어떻게 재편성돼 왔는지를, 그리고 지금 겪고 있는 이행과 미래는 무엇일 것인가를 짚어보는 준거틀로 의미가 있다. 02-2210-2285.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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